[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열림에 대하여 -괴테의 미완성 드라마 ‘마호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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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 장면, ‘들판. 별이 가득한 하늘’ 부분이 쓰여 남아 있는 괴테의 드라마 ‘마호메트’는 시 한 편에다 무대 설명과도 같은 앞부분이 더해진 짧은 미완성 단편(斷片)이다.
무한한 자연 속에서 무한히 자신을 열며 특별한 소명을 느끼는 청년 마호메트 ‘무하마드’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와 딸 파티마가 노래 하나를 번갈아가며 부른다. 그 노래가 별도로 익명으로 발표되어 나중에 질풍노도기 괴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게 된 시 ‘마호메트의 노래’이다.
마호메트의 노래라지만 제목을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의 묘사일 뿐 아무런 사람의 자취가 없다. 그러나 맑은 샘에서 발원하여 작은 개울들이 모여 점점 넓혀지며 주변을 비옥하게 하며 흐르다가 마침내 대양으로 흘러드는 도도한 강물을 담은 이 노래는, 큰 생애를 암시하는 비유로 가득하다. “걸음마다” 꽃들이 밟히는 게 아니라 “피어나고”, 도시가 생겨난다. 그런 큰 생애를 더 상세히 산문으로 그려보이려 한 시도가 드라마 ‘마호메트’이다.
스물두 살의 괴테는 헤르더에게(1772년 7월 10일) 썼다. “나는 코란 속의 모세처럼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여, 제 좁은 가슴속에 공간을 만들어주소서.” 드라마 ‘마호메트’의 시작부분은 이 문장의 부연과도 같다. 후에 종교를 창시하는 큰 인물이 되는 한 청년에 대한 청년 괴테의 관심은 스스로 코란을 읽으며, 몇몇 장은 직접 번역도 해보면서 시작되어 오래 지속되었다. 남아있는 드라마 첫머리에서 마호메트가 느끼는 온 누리에 깃든 신의 편재(遍在)는 괴테 자신이 번역해본 코란의 6장에 기반하고 있다.
무신론자조차 용납이 안 되던 시대의 기독 세계 한가운데서 괴테가 이슬람의 창시자에 대해 가졌던 관심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더구나 편린에 그친 이 작품은 괴테의 오랜 관심의 단초일 뿐이다.
노래든 드라마 시도이든 일차적으로는 종교까지 창시하는 한 큰 인물에 대한 관심이겠고,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이겠고, 무엇보다 찾아보기 드문 열린 마음의 증거이다. 당시 유럽에서 마호메트를 다룬다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웠고 드물게 작품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은 볼테르의 ‘마호메트’처럼 광신과 독신으로 개인과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압제자였다. 괴테의 ‘마호메트’가 미완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드라마는 미완성에 그쳤어도 품었던 관심은 만년까지 꾸준히 이어져 40여년 후 주옥 같은 시편들과 방대한 오리엔트론을 담아 서구인들에게 오리엔트를 열어주는‘서.동 시집 West-stlicher Divan’(초판 1819, 증보판 1825)이라는 대작으로 결실된다. 그것은 세계문학의 시대를 활짝 연 책이기도 하다.(세계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도 괴테로 거슬러 오른다.)
만년에 괴테는 종교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자연과학자로서는 범신론자, 시인으로서는 다신론자, 개인적으로는 유일신론자”라고 정리해 놓았다. 자연과학자로서 모든 자연 속에 신이 있다는 믿음으로 연구했고, 시인으로서는 “이슬람은 신에의 귀의 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이슬람 안에서 살고 죽는다”고 공언할 정도로 열려 있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독실한 유일신론자였다. 종교문제에서도 이럴진데 다른 건 얼마나 더 마음 열고 바라보았을지 가늠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종교라는 엄중한 사안에서까지 이렇듯 자신을 열 수 있었던 청년에게서 훗날의 큰 학자, 큰 문인, 통합적 인물, 괴테가 커나왔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세계는 참 아름답다.
꼭 그렇게까지야 아니더라도 우리도 조금씩만 더 마음을 열수 있다면 자신과 세상이 얼마나 더 평화로울까를 생각하게 된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무한한 자연 속에서 무한히 자신을 열며 특별한 소명을 느끼는 청년 마호메트 ‘무하마드’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와 딸 파티마가 노래 하나를 번갈아가며 부른다. 그 노래가 별도로 익명으로 발표되어 나중에 질풍노도기 괴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게 된 시 ‘마호메트의 노래’이다.
무신론자조차 용납이 안 되던 시대의 기독 세계 한가운데서 괴테가 이슬람의 창시자에 대해 가졌던 관심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더구나 편린에 그친 이 작품은 괴테의 오랜 관심의 단초일 뿐이다.
노래든 드라마 시도이든 일차적으로는 종교까지 창시하는 한 큰 인물에 대한 관심이겠고,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이겠고, 무엇보다 찾아보기 드문 열린 마음의 증거이다. 당시 유럽에서 마호메트를 다룬다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웠고 드물게 작품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은 볼테르의 ‘마호메트’처럼 광신과 독신으로 개인과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압제자였다. 괴테의 ‘마호메트’가 미완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드라마는 미완성에 그쳤어도 품었던 관심은 만년까지 꾸준히 이어져 40여년 후 주옥 같은 시편들과 방대한 오리엔트론을 담아 서구인들에게 오리엔트를 열어주는‘서.동 시집 West-stlicher Divan’(초판 1819, 증보판 1825)이라는 대작으로 결실된다. 그것은 세계문학의 시대를 활짝 연 책이기도 하다.(세계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도 괴테로 거슬러 오른다.)
만년에 괴테는 종교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자연과학자로서는 범신론자, 시인으로서는 다신론자, 개인적으로는 유일신론자”라고 정리해 놓았다. 자연과학자로서 모든 자연 속에 신이 있다는 믿음으로 연구했고, 시인으로서는 “이슬람은 신에의 귀의 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이슬람 안에서 살고 죽는다”고 공언할 정도로 열려 있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독실한 유일신론자였다. 종교문제에서도 이럴진데 다른 건 얼마나 더 마음 열고 바라보았을지 가늠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종교라는 엄중한 사안에서까지 이렇듯 자신을 열 수 있었던 청년에게서 훗날의 큰 학자, 큰 문인, 통합적 인물, 괴테가 커나왔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세계는 참 아름답다.
꼭 그렇게까지야 아니더라도 우리도 조금씩만 더 마음을 열수 있다면 자신과 세상이 얼마나 더 평화로울까를 생각하게 된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