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치의제 앞장서 도입하는 까닭은 - 문인 광주 북구청장
2025년 08월 26일(화) 00:00
#장면 1.한국 드라마에 이따금 등장하는 한 대목. “김 비서, 회장님 쓰러지셨으니 빨리 주치의 불러!” 평범한 가정에서 두기 힘든 ‘주치의’는 주로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든 채 재벌총수 저택을 황급히 방문하는 의사로 여겨진다. 최상류층 상징이자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방문 치료’ 호사다.

#장면 2.“내 주치의는 무척 유명한 의사랍니다. (My PCP(primary care provider) is very famous doctor)” 미국 영화 등에서는 내 가족처럼 가까이에서 건강을 보살펴주는 의료진이다. 일생에 걸쳐 건강 문제 전반을 상담하고 항상 친절하게 치료하는 의사다. 단순한 의료행위를 넘어 건강을 총괄 관리해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특권층만의 의료혜택을 떠올리게 하는 ‘주치의’ 전성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던 동네 단골 의사를 우리도 마주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광주 북구가 선도적으로 추진 중인 ‘국민주치의제’는 공공보건 영역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게 1단계 목표다.

병을 앓기 쉽거나 자주 검진을 해야 하는 노인, 장애인, 어린이와 1차 의료기관 사이에 원활한 의료정보 그물망(네트워크)을 구축하고 병원 문턱을 낮추는 게 급선무다. 의료 취약계층 건강을 보살피면서 이웃이 아플 때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국민주권 의료복지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복지비 과다’로 재정 사정이 비교적 열악한 북구가 국민주치의제 실현을 향해 발 벗고 나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의료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65세 이상 노인이 8만2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 42만여 명의 20%에 가깝다. 광역시로는 이례적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기초수급자 비율도 8.2%로 전국 1위다.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공공보건 체계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다. 의료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지만 1차의료 체계가 너무 취약한 점도 난관이다.

때마침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1차 의료기반 건강·돌봄 정책’을 포함했다. 새 정부는 ‘단골 의원, 약국 중심 ’우리동네 1차의료체계‘ 구축을 공약했다. 국민주치의제가 근간이다. 새 정부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기본사회를 위해 새로운 의료·복지 도입에 적극적이다.

광주 출신으로 ‘코로나 극복’ 상징이 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6일 노인정책관, 의료·요양·돌봄통합지원단장을 대동하고 북구보건소를 직접 찾아 국민주치의제 시범 도입의 현주소를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건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GDP 대비 의료비는 2014년 6.5% 수준에서 2019년 1.5% 증가한 8.0%로 급증했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 추세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도 모자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89.4%)이 만성질환자로 분류된 현실이다.

북구는 보건복지부 협의절차를 조속히 밟은 후 제주도와 함께 시범사업에 나선다. 9월 중 조례 제정과 동시에 조직개편을 통해 전담조직(가칭 주치의추진단)과 협의체를 설치·운영한다. 주민 누구나 집과 가까운 의료기관에 등록한 뒤 의료상담은 물론 질환 치료를 받는 건강관리 시스템을 시범 가동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 북구 주민들은 나만의 ’주치의‘를 동네병원에 두게 된다. 특권층 전유물로 여겨지던 주치의가 집과 가까운 일상 속에서 예방접종, 방문진료, 비대면 진료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면을 머잖아 눈앞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모든 삶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 생명의 값어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국가·지자체·의료계는 삶과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할 책무를 지닌다.

국민주치의제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차원을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존엄을 보장하는 포용적 복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아프기 전에 질병을 막고 질환을 앓는 이들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평생 돌봐주는 선진 의료체계. 국민주치의제는 그야말로 기본사회의 진정한 보루다. 더 늦기 전에 범국민적 운영을 통해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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