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인생, 알렉산더 마스터스 지음, 김희진 옮김
2025년 08월 22일(금) 00:00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148권의 일기장이 있다. 한 사람이 50년에 걸쳐 써내려간 인생의 조각들이다. 고급 양장 노트부터 싸구려 연습용 노트패드까지 갖가지 일기장에 써내린 기록의 양은 무려 1만5000페이지에 달한다.

일기장은 성별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채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전기 작가 알렉산더 마스터스는 이 버려진 인생에 매혹당한다.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인물의 전기를 쓰겠다는 기이한 계획이 ‘폐기된 인생’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나’의 삶을 시간 역순으로 그려내며, 전기라는 장르를 새롭게 해석했다. ‘아무도 아닌’ 인물의 일기장을 추적하며 또 한 편의 독특한 전기를 만들어냈다.

책의 전반부는 추리소설처럼 전개된다. 작가는 일기의 단서들을 토대로 실체 없는 주인공의 흔적을 좇는다. 주소, 학력, 일했던 도서관, 생리 주기 기록 등을 통해 일기장의 주인은 여성이라는 사실도 알아낸다. 도움을 받는 이는 필적학자와 사립탐정. 마치 한 편의 탐정 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정수는 오히려 그 긴장감이 허물어지는 순간 찾아온다. 일기의 주인공은 유명인도, 비범한 업적을 남긴 이도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 “실패하고 흔들리며 살아간 평범한 사람”이다. 마스터스는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기를 쓰는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그게 최상의 결과”라고.

<문학동네·1만8000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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