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기꺼이 몰락하는 삶을 위하여 - 신우진 광주시민인문학(협) 이사장
![]() |
나는 니체를 사랑한다. 단순히 그의 문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고, 그의 투쟁, 그의 몰락을 사랑한다. 니체는 언제나 내게 속삭여 왔다. “기꺼이 몰락해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그 말에 응답하고자 살아간다. 몰락은 패배가 아니다. 니체가 가르쳐준 몰락은 낡은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주어진 삶을 두려움 없이 통과하는 것이다.
나무가 더 높이 자라기 위해 낡은 가지를 떨구듯 나도 나를 이루던 오래된 신념을 내려놓는다. 그것이 몰락이고 동시에 성장이다.
인생은 매끈하지 않다. 나는 ‘지금·여기’를 살면서 이 단순한 진실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버텨내던 시간은 지나갔고 삶의 무게는 더욱 구체적이 되었다. 직장에서의 평가, 인간관계에서의 소모, 경제적 불안, 몸의 변화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앞에 두고 나는 니체의 문장을 떠올린다. “오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니체는 나를 약자가 되지 않게 만든다. 그는 ‘동정 받으려는 자’를 경멸했다. 몰락할 때조차 스스로를 미화하거나 타인의 동정을 구걸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힘든 날, 주저앉고 싶을 때, 나는 내 안에서 속삭인다. “오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고히, 다시 일어선다. 나는 매주 한 번 니체 강좌에 참여한다. 한 사람으로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잘 몰락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다. 나는 강의실에 앉아 니체를 읽으며 기존의 신념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뜯어고친다. 매번, 조금씩, 기꺼이.
그러나 이 길은 고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락을 추구한다. 무너지지 않으려 상처 입지 않으려 자신을 에워싼 세계를 더욱 단단히 결박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런 삶을 비웃었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편안한 노예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위험 속에서 자유인이 되고 싶은가?”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비록 이 길이 외롭고 때로는 처절하더라도 나는 자유를 택하겠다. 진정한 자유인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가져다주는 실패, 배신, 불안, 상실…. 이 모든 것을 껴안고서도 당당히 살아간다. 니체가 말했듯 자유인은 스스로를 넘어서야 한다. 나는 매일 작은 자기극복을 시도한다. 습관처럼 되뇌인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솔직했는가?” “오늘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는가?” “오늘 나는 두려움 대신 창조를 선택했는가?”
자유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스스로에게 내리는 작은 선언, 작은 승리, 작은 몰락, 작은 실천들의 누적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몰락하고 다시 시작되는 ‘영원회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이 영원회귀를 긍정하라고 했다. 똑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기꺼이 다시 살고 싶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삶의 좌표로 삼는다. 오늘 이 순간, 내가 내린 선택과 견딘 고통과 맞서는 두려움을 기꺼이 다시 살아도 좋을 만큼 내 삶을 스스로 긍정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몰락한다. 오만을 버리고 무지를 인정하고 실패를 껴안으며 몰락한다. 그러나 나는 주저앉지 않는다. 나는 몰락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나는 몰락 속에서 나 자신이 된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차서 되뇐다.
“오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인생은 매끈하지 않다. 나는 ‘지금·여기’를 살면서 이 단순한 진실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버텨내던 시간은 지나갔고 삶의 무게는 더욱 구체적이 되었다. 직장에서의 평가, 인간관계에서의 소모, 경제적 불안, 몸의 변화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앞에 두고 나는 니체의 문장을 떠올린다. “오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고히, 다시 일어선다. 나는 매주 한 번 니체 강좌에 참여한다. 한 사람으로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잘 몰락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다. 나는 강의실에 앉아 니체를 읽으며 기존의 신념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뜯어고친다. 매번, 조금씩, 기꺼이.
그러나 이 길은 고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락을 추구한다. 무너지지 않으려 상처 입지 않으려 자신을 에워싼 세계를 더욱 단단히 결박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런 삶을 비웃었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편안한 노예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위험 속에서 자유인이 되고 싶은가?”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비록 이 길이 외롭고 때로는 처절하더라도 나는 자유를 택하겠다. 진정한 자유인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가져다주는 실패, 배신, 불안, 상실…. 이 모든 것을 껴안고서도 당당히 살아간다. 니체가 말했듯 자유인은 스스로를 넘어서야 한다. 나는 매일 작은 자기극복을 시도한다. 습관처럼 되뇌인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솔직했는가?” “오늘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는가?” “오늘 나는 두려움 대신 창조를 선택했는가?”
자유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스스로에게 내리는 작은 선언, 작은 승리, 작은 몰락, 작은 실천들의 누적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몰락하고 다시 시작되는 ‘영원회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이 영원회귀를 긍정하라고 했다. 똑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기꺼이 다시 살고 싶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삶의 좌표로 삼는다. 오늘 이 순간, 내가 내린 선택과 견딘 고통과 맞서는 두려움을 기꺼이 다시 살아도 좋을 만큼 내 삶을 스스로 긍정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몰락한다. 오만을 버리고 무지를 인정하고 실패를 껴안으며 몰락한다. 그러나 나는 주저앉지 않는다. 나는 몰락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나는 몰락 속에서 나 자신이 된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차서 되뇐다.
“오냐, 이것이 인생이더냐. 그렇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