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살아’] 파격의 창극 ‘심청’ 오늘의 옷을 입다
2025년 08월 21일(목) 00:00
창극의 새로운 시작을 목도했다. 지난 13일 전주 소리의 전당에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메인 프로그램 창극 ‘심청’이었다. 이번 작품은 국립창극단과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공동 투자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이 연출하고 창극단의 스타 단원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심봉사 역을, 김우정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김율희가 심청을 맡았다. 이번 ‘심청’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효녀 심청의 전통적 내용과 다른 전복적인 해석의 작품이 될 것으로 알려져 초연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공연 전 소리의전당 모악당 객석에 들어가니 흑백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공연 전에 길거리 인터뷰를 한 내용이었다. 심청이는 누구일까,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역시 이구동성으로 ‘효녀 심청’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막이 오르자 음악이 펼쳐지는데 오케스트라 피트에 국악단이 들어가 있었다. 기존 공연과 달리 지휘자 없이 가운데 가부키의 화도(주인공을 비롯한 배우들이 특별히 등퇴장하는 길)와 비슷한 길을 만들어 놓았고 그 옆으로 반으로 나뉘어 국악단 연주자들이 나누어 앉았다.

그 밑에는 마치 바그너 오페라페스티벌이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처럼 클래식 악기 단원들이 배치돼 음악의 풍성함을 배가시켜주었다.

첫 번째 장면은 오페라로 보자면 합창에 해당하는 떼창이었다. 중간 중간에 화음을 넣는 서양식 합창이 아닌 150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모두 같은 음을 부르는 유니즌으로 같이 부르는 이 합창 장면은 매우 힘찼고 중국의 경극을 비롯한 일본 가부키에서 볼 수 없는 창극의 대단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은 한국 전통의상을 벗고 현대식 의상을 입었는데 심청이 이제 고전 속의 청이가 아닌 우리 시대에도 있을 수 있는 청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공양미 삼백석에 자신의 몸을 남경상인에게 맡기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폭력성을 접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무대 위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닌자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라이브 카메라로 배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벤야민 뤼트케가 활약하면서 청중은 심청이나 심봉사, 뺑덕어멈, 노파심청의 표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늘 믿을 구석이라고 여겨왔던 장승상댁 부인의 이기적인 면모가 예리하게 새로운 시각을 찔러주어서 가슴아팠다. 무대와 오케스트라 피트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길이 인당수 장면에서 심청이 오케스트라 피트를 뛰어내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길이 열리면서 심청은 인당수 속으로 스르륵 흘러내려갔다. 내겐 놀랍고 충격적인 연출이었다.

1막은 상당히 무겁고 어두우며 마음 아프게 진행되었다. 이 장면까지가 1막이었는데 호흡이 길었던 1막에서 객석을 떠나는 청중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창극은 전통의상 한복을 입고 불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대단한 파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판소리를 창극으로 만들 때도 이런 반발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실험과 반발의 변증법은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에서 심청이를 잃은 슬픔은 잊어버리고 주색에 빠진 심봉사와 뺑덕어멈의 쾌락의 2중창은 마치 오페라 부파(코믹오페라)같이 재미있었고 1막의 무거운 분위기를 일순 바꿔준 장면이었다. 2막의 진행은 빨랐는데 뺑덕어멈은 심봉사를 이용만 해 먹고 한쪽 눈 만 떠도 된다며 공양미 150석은 자신이 꿀꺽해버렸다. 유태평양의 연기는 2막에서 빛을 발했다.

전국 봉사대회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청이가 돌아오기는 했지만, 꿈쩍않는 모습에 이제 청이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 심봉사는 후회의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된다. 이 모습에서 심봉사가 과연 눈을 뜬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데 심봉사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 심봉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심청이 모악당 로비에서 나와 거리로 사라지는 장면. 자신의 모든 세계를 지배했던 아버지와 주위의 폭력으로부터 떠나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 미래지향적 심청의 모습이었다.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함이 오히려 열린 결말이 되어서 좋았다. 9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도 이 파격적인 ‘심청’을 만날 수 있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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