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며 ‘들숨’ ‘날숨’…그리고 ‘잠깐 멈춤’의 명상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천년사찰 힐링숲길 걷기명상, 여태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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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 ‘봉선사’ |
![]() 정읍 ‘내장사’ |
순천 송광사 불일암으로 가는 대숲 길 초입에 적힌 팻말이다. 나무관도 없이 평소 입었던 가사를 입고 저 너머의 세계로 떠났던 법정스님. 불일암에는 법정 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스님이 가시고 난 후 상좌스님이 머물며 가풍을 잇고 있다.
불일암 앞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있다. 계절에 따라 감꽃이 피고 감이 열리고 붉은 홍시도 보게 된다. ‘무소유 숲길’이라고 명명된 일대는 고즈넉하며 다양한 식물과 나무들이 에둘러 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생전 법정 스님이 남겼던 주옥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 우리네 사찰을 찾아가면 무성하면서도 아늑한 치유의 숲길을 만날 수 있다. 불교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태동이 펴낸 ‘천년사찰 힐링숲길 걷기명상’은 22곳의 사찰 숲길을 담고 있다. 저자는 법정 스님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숲과 문학 치유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국의 사찰 숲을 걸으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책에 담았다. 10여 년 전 전국 사찰의 숲길을 걸으며 사유했던 글들을 ‘불교신문’에 실었다. 이후 다시 숲길을 찾아 ‘한 걸음에 숨을 들이키고 한 걸음에 숨을 내쉬는’ 호흡도 병행하며 관조와 성찰의 마음을 담았다. 초기불전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의 경’을 음미하며 부처의 가르침도 마음에 새기기도 했다.
백련사 동백숲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 이름을 올릴 만큼 멋스럽고 고즈넉한 길이다. 이 길은 다산 정약용이 귀향 시절 한때 기거했던 다산초당과도 이어지는 길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작은 새들이 마중하듯 반갑게 맞아주는데 나무마다 새들이 깃들어 있는 느낌을 준다.
![]() 영주 ‘부석사’ |
![]() 강화 ‘전등사 ’ |
숲길에는 백련사 혜장 스님과 다산초당 정약용의 도타운 인연도 드리워져 있다. 유배지에서 다산은 자신보다 비록 나이는 적지만 법력이 있었던 혜장 스님에 감응해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혜장 스님은 유학을 배우고, 다산은 선과 차를 배웠다. 동백숲길이 아름다운 것은 두 성현의 교분을 매개로 사상, 학문,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영국 여왕이 방한했을 당시 가장 한국적인 건물을 보고 싶어 했다. 국내 최고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던 안동 봉정사가 선택됐다. 여황은 만세루의 법고를 둘러보며 연신 ‘원더풀’을 쏟아냈다.
봉정사는 봉황(鳳)이 머무는 정자(停)라는 의미가 투영돼 있다. 입구는 말 그대로 봉황이 날아들 법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고찰이 자리한 천등산 자락은 녹음이 무성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매표소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굵은 소나무들이 키를 높이고 있어 걷는 내내 위로와 힐링을 안겨준다.
특히 푸르른 녹음이 절정을 이루는 여름에 가 볼만한 숲길로는 부여 무량사 설잠스님길을 비롯해 공주 마곡사 백범 명상길, 김천 직지사 직지숲길, 강화 정수사 함허 대사길이 있다.
<시간여행·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