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K출판 열기
‘K-출판’은 인기 상승중, 서울국제도서전 풍경
MZ까지 즐기는 힙한 트렌드…역대 최대 15만 명 관람
2025년 08월 06일(수) 16:30
지난 6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이 책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퇴근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최모(32)씨는 SNS 피드를 넘기다 당황하고 말았다. 팔로우하고 있는 ‘인친’들 사이에서 갑작스레 유행처럼 번진 건 바로 서울국제도서전 인증샷이었다.

민음사에서 제작한 ‘고운 말 미니북 키링’ 굿즈, ‘오늘의 젊은 작가’ 한정 북커버, 배우 박정민이 직접 부스를 지킨 독립출판사 ‘무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 중인 ‘평산책방’ 앞 인파 사진까지. 지인들의 연이은 인증샷을 보며 자신만 트렌드에 뒤처진 듯해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년에는 필히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한동안 SNS에서 화제가 된 주인공은 지난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었다. 출판사와 저자, 독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축제로, 1954년 전국도서전시회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책도 책이지만 출판사에서 제작한 굿즈와 유명인, 공간 자체가 화제가 된 도서전의 모습은 더 이상 출판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20~30대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도서전을 ‘감성 놀이터’처럼 즐기며 개인 SNS에 게시하면서 트렌드로 확산시켰다.

도서전은 분명 ‘축제’였다. 주최 측 발표에 따르면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행사가 진행된 5일간 15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오전 10시 개장 시간 전부터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 부스 옆 바닥에 앉아 책을 읽거나 김밥을 먹는 사람들, 심지어 화장실 앞 복도까지 가득 찬 관람객들. 책을 향한 관심이 이렇게까지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 부스에 몰린 도서전 관람객들. <차예지씨 제공>
15만 명이라는 이례적인 참여를 가능케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트렌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도서전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MZ세대의 ‘텍스트 힙’ 열풍이다. ‘텍스트 힙(text hip)’은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트렌드다. 미국, 유럽, 일본의 MZ세대들 사이에서 ‘북스타그램(북+인스타그램)’이 일상화되면서 책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닌 ‘꾸미는 콘텐츠’가 되었다.

또한 책은 감성을 표현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인증 가능한 콘텐츠’로도 자리매김했다. SNS에서 ‘책을 읽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었고 도서전은 이를 표현하는 실질적 공간이 되었다.

둘째, 배우 박정민과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의 부스 운영, 작가 김영하의 북토크 등 인플루언서 중심의 화제성은 참여 욕구를 끌어올렸다. 단순 관람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셋째, 도서전이 단순한 책 판매 행사를 넘어서 굿즈, 포토존, 주제전시, 체험 공간이 결합된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책마을’로 명명된 독립출판 부스 거리, 나만의 씨앗을 심는 ‘믿을 구석’ 체험존 등은 감각적인 관람 경험을 제공했다.

디지털 피로 시대 속에서 책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유와 집중, 느림과 위안을 담은 매체로서 책은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도서전은 그 상징처럼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흐름이 겹치면서 도서전은 단순한 ‘책 행사장’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감각적으로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가장 보여주는 ‘축제’가 되었다.



독립출판·아트북 출판사들을 한데 모은 ‘책마을’ 부스에 관람객들이 모여 있다. <차예지씨 제공>
화려해보이는 흥행 속에 아쉬운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했다. 광주에서 동네서점을 운영 중인 ‘예지책방’의 차예지 대표는 올해 도서전을 “가장 복잡한 마음으로 다녀온 해”라고 돌아봤다.

“솔직히 ‘도서전인데 책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줄 서서 굿즈를 받고, 인증샷을 찍고, 체험 부스만 훑고 가버리는 거예요. 책을 사가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고요.”

차 대표는 특히 올해 도서전 운영 주체의 변화와 ‘사유화 논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예전에는 출판인들이 중심이 되어 함께 만드는 도서전이었는데, 올해는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되며 방향성이 소수 대주주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됐어요. 현장 판매가 없는 티켓 정책도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겐 장벽이 되었고요.”

MZ세대가 도서전의 주역으로 떠오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빠르게 매진된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한 관람객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이라는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책을 좋아하는 나’를 연출하거나, 출판사와 책방 등에서 제공하는 굿즈를 수집하며 취향과 감성을 표현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이런 흐름은 명확히 보였다. ‘굿즈 받으러 간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많은 관람객이 북커버, 키링, 포스터, 한정판 책자 등 SNS 인증용 소품을 중심으로 부스를 찾고 있었다. 책방 운영자들이 “책은 보지만 사가지 않는다”며 씁쓸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을 향한 관심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관심이 실제 독서나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출판 생태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오지 않으면 트렌드에서 소외되는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도서전이 열린 주간 동안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서울국제도서전’은 수만 건 이상 쏟아졌고, 도서전 인증샷이 뉴스피드 절반을 채웠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문화 소비 양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우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그렇게라도 책을 보게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냐”, “굿즈나 유명인 덕분에라도 도서전에 발길을 옮겼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작”, “어떤 계기로든 책과 처음 만난다면 거기서부터 또 다른 독서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중요한 건 이 흐름이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으로 번져나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굿즈가 계기가 되든, 인플루언서가 동기가 되든, 결국 책이라는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지금의 흥행도 분명 의미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독립출판 ‘어흥대작전’ 부스에 방문해 작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차예지 대표(왼쪽). <차예지씨 제공>
서울국제도서전의 또 다른 보물은 독립출판 부스에 있었다. ‘책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한 데 모인 소규모 출판사와 1인 창작자들의 책들은 기성 출판사에서 만나기 힘든 참신함으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여행, 반려동물, 그림일기, 여성서사 등 각자의 색을 가진 책들 앞에서 발길을 멈춘 이들은 실제로 책을 사가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차 대표가 도서전을 찾은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독립출판 부스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다른 기성 출판은 사진만 찍고 인터넷으로 살 수도 있는 거지만 독립출판물 부스들은 여기에서만 살 수 있으니까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부터 보는 거죠. 전국을 다니기 힘드니 이 기회에 전국에 있는 독립출판 작가나 책방들을 만나보는 거에요. 부스마다 컨셉이 있으니 둘러보는 재미도 굉장해요.”

주제 전시관도 호평을 받았다. ‘믿을 구석’이라는 올해 주제에 맞춰 관람객들이 자신의 ‘믿을 구석’을 적어 씨앗과 함께 전시 공간에 꽂는 체험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머무르게 했다.

다만 공간 구성과 동선, 관람 편의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차 대표는 “쉴 공간이 없어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책을 즐기기 위해 온 공간에서 오히려 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건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예지책방’ 차예지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지난 6월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에 방문했다. <차예지씨 제공>
“지역의 작은 책방 운영자이면서 또한 독자이기도 한 저에게 도서전은 출판 생태계를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현장이자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를 꿈꾸게 하는 자극이기도 합니다. 도서전의 관심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로 인해 일상에 책이 함께하는 게 당연해지길 바랍니다. 단순히 책을 사서만 보는 것만이 아니라 북토크에 참여해보고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을 해보는 등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쪽으로도 관심을 가져보고 그러한 것들이 내 일상에 녹아드는 하나의 친구처럼 자리잡길 바랍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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