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되짚어본 광주·전남 아·태전쟁 유적] 수풀에 방치되고 사유지라 손 못대고… 사라져가는 ‘전쟁 상흔’
<14> 방치되는 전쟁 유적들
광주·전남에 400여곳에 전쟁 유적
실태조사 제대로 안되고 관리 사각
해남 옥매산 채굴 현장 안내판도 없어
해안 동굴은 잡초·쓰레기에 뒤덮여
신안 비금면 진지 2기는 소실돼 흔적만
광주 쌍촌동 방공호 지붕 균열·목재 부식
2025년 08월 03일(일) 18:40
무안군 현경면의 비행장 격납고 엄체호 외벽 콘크리트가 부식되고 부서져 철근이 노출돼 있다.
광주·전남에만 400여 곳의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이 남아 있지만, 대다수는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허물어지거나 잔해만 남아 있다.

산업화와 개발, 세월의 무관심 속에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해방 이후 적잖은 유적들이 사유지와 개인재산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이나 관광, 문화적 활용은커녕 그 위치와 이름, 남긴 의미조차 알기 어려운 곳이 많다. 강제동원과 식민지 수탈의 치욕을 품었던 현장 대부분은 관리 책임의 빈틈 속에 80년 전 존재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해남군 옥매산 중턱에 있는 명반석 저장소. 건물에 덩굴이 뒤덮이고 수풀이 우거져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주체도 없이 방치된 유적들

해남 옥매산 일대는 일제강점기 명반석 채굴과 강제동원의 흔적이 대규모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찾으면 안내판조차 하나 없이 황량한 풍경만 남아 있다. 일제의 무자비한 채굴로 산 정상은 절반이 깎여 나갔고, 바닷가에는 높이 10m, 폭 30m에 달하는 콘크리트 적재창고가 잡풀과 외벽 파손, 자연 붕괴로 점점 존재를 잃어가고 있다.

산 중턱에는 성냥갑 모양의 2차 저장소가 있으나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만큼 숲이 우거져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근의 화약창고, 뇌관 보관소, 일본인 사택, 광산 관리사무소, 도자기공장, 옛 병원 터 등도 안내판이나 보존시설 하나 없이 잡초와 흙더미에 덮여 있다. 해남 유적들은 대부분 조선대 사학법인의 사유지라는 이유로 관리조차 안 되고 있다.

해남에서는 유일하게 옥동 선착장만이 해방 직후 귀향하던 옥매광산 노동자 250여 명 중 118명이 청산도 해상에서 침몰사고로 숨진 ‘해몰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군민들이 사비를 모아 추모비를 세웠지만,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기념제 외에는 별다른 보존·활용 시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목포 고하도에는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뚫은 동굴과 주정기지(발동정 비밀 항구) 등 17개를 비롯해 길이 40m 창고 겸 막사 건물 등 일본군 흔적이 있으나, 섬 북동쪽의 해상데크로 연결된 일부 주정기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도 유적이 맞는지조차 몰라볼 만한 상황이다.

섬 북서쪽에 몰려 있는 십수개의 해안 동굴은 잡초와 쓰레기로 채워진 채 아무 조치가 돼 있지 않으며, 일본군 막사 건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기도원 등으로 활용되다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다. 수십년 된 먼지가 건물 내외부에 가득 쌓여있고 천장재와 바닥 마루 나무가 썩어 부서져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다.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불탄봉, 음달산 등에 있는 토치카와 관측소, 기관총 진지와 포대 등 군사유적도 원형을 잃거나 폐허로 남도록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방공호는 마을 뒤뜰에 그대로 남아 있고 내부에는 나무토막 지지대와 소리 흡수 구조 등 당시 군사 목적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이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해방 직후 일본인들의 묘지와 주거지는 철거돼 흔적조차 없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의 일본군 비행장 유류고로 쓰였던 인공 동굴 내벽에 금이 가고 외부에서 토사가 흘러들어오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전쟁 상흔

신안군 일대에 남아 있던 일본군군사시설 대부분은 관리나 보존·활용계획조차 세울 새도 없이 사라졌다.

신안 비금도 비금면 내월리 산115 일대에는 1944년 설치된 전파경계기 진지 2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소실돼 흔적만 남았다. 당시 진지는 암반 절개와 콘크리트 기저부로 구축됐으며 한 개는 전파경계기 본체, 한 개는 운용요원 막사 용도로 쓰였다. 부근에는 생활관 터, 포대 터, 발전소 터 등도 있었으나 이 역시 모두 사라진 상태다.

신안 자은도 자은면 한운리 산175에는 1940년대 건립된 해안 방어 동굴 2기가 있었는데, 이 중 1기는 보존 상태가 불량하며, 1기는 완전히 소실됐다. 같은 마을 산165-8의 철근콘크리트 벙커 3곳도 해안을 향해 남아 있으나 안팎이 붕괴돼 진입이 불가능하다. 동굴과 벙커 대부분은 안내판 하나 없이 수풀에 덮여 방치돼 있다. 옥도 일대 주둔지와 우물터 등 일본군 관련 유적도 현재는 모두 소실됐고, 증언만 전해질 뿐이다.

광주 치평동과 상무지구 일대 일제 비행장 및 군사시설 역시 대부분 원형을 잃고 사라진 상태다.

1939년 조성된 치평리비행장(활주로 900m)은 1942년 일제 육군이 민간 항공비행장을 군용부지로 전환한 뒤 1945년까지 비행장·방공호·항공유 저장고·탄약고 등 각종 군사시설을 잇따라 조성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5·18역사공원 내 지하방공호 일부와 화정동 독립운동회관 주변 유류고·격납고 등 일부 잔존 시설만이 당시의 흔적을 간신히 보여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활주로·격납고·항공대 건물·탄약고·군사시설 등은 흔적도 찾기 어려운 상태다.

목포시 고하도에 있는 옛 일본군 막사가 지역 주민들의 기도원 등으로 쓰이다 방치돼 천장과 바닥 마루가 부서지고 집기가 널부러져 있다.
◇사유지라서…손도 못 대는 역사 현장들

사유지라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손도 못 댄 채 보존은커녕 현황 조사조차 못 하고, 아예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곳도 있다.

광주시 서구 쌍촌동 5·18역사공원과 그 인근에 있는 일본군 방공호도 대부분 출입문이 부서져 있거나 입구는 토사에 매몰돼 있다. 구조물 내부에서는 콘크리트 지붕과 벽체 균열, 누수 흔적, 내부 목재 구조물 부식 등 파손된 것을 볼 수 있다.

방공호 중 하나인 대형 물탱크는 사유지 및 예산 문제로 조사조차 추진되지 않고 있다. 비가 올 때마다 구조물 내부로 흙더미가 밀려들어오고, 흙더미 무게와 습기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물에 금이 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수시 신월동의 국내 유일의 일본군 해상 활주로(가로 210m×세로 100m)는 일부가 매립된 채 바다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곳 활주로와 연결된 콘크리트 격납고 4곳 중 3곳의 경우, 입구가 막힌 채 사유지로서 창고로 쓰이고 있으며, 1곳은 흙에 파묻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인근의 한화 여수공장 내에는 연료고로 쓰인 지하동굴 5기 등 일제 군사시설이 남아 있고, 신월리선 철도굴, 자산공원·돌산 일대 포진지도 부분적으로 보존돼 있다. 여천초 뒷산의 해군 지하벙커, 통신용 전신소 굴뚝 등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 유적 다수는 사유지이거나 군 관련 부지로 활용이 제한적이고 별도 안내·관리·보존 계획 없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무안군 망운면과 현경면 일대에 남은 일본군 비행장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비행기 격납고와 진지 터 정도만 남아 있다. 이들 격납고 엄체호도 대다수가 사유지에 포함돼 있어 별다른 보존 조치를 하지 않고 있으며 도로 개설, 자연 붕괴 등으로 콘크리트 몸체가 부식되고 떨어져 나간데다 잡풀과 토사가 내부를 메우고 외벽 곳곳에 균열이 깊게 퍼지는 등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망운면 목동리 고구마밭 옆에 자리한 격납고는 입구 천장이 절반가량 무너져 철근이 드러났고, 후면은 토사와 수풀에 막혀 출입 자체가 어려운 상태다. 평산리의 한 격납고는 비닐로 임시 덮개를 씌운 채 방치된 상태였고, 내부 틈마다 잡초와 거미줄이 자라고 있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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