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남은 작은 별빛같은 이야기들
김해성 화가 여행스케치 담은 ‘길을 걷다 줍는 별’ 펴내
해외·배낭 여행에서 만난 흔적들, 글과 그림으로 묶어
2025년 07월 30일(수) 19:45
‘길을 걷다 줍는 별’ 표지
몽골 초원 유목민의 거주지인 게르를 그린 스케치 작품.
광주일보 2015년 4월 20일자 11면
“아! 저 많은 말로는 뭐라 형용키 힘든 아름다운 별들. 태고의 그 누군가도 오늘의 나처럼 자다 일어나 감동어린 눈으로 저 하늘의 별들을 바라봤겠지? 수천 수만 년 동안 늘 변함없이 그대로였을 저 깊고 넓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에 흩뿌려진 별들.”

광주일보 창사 63주년 특집 기획 ‘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2015년 4월 20일자 11면)에 실린 김해성 화가의 글이다. 시리즈 첫 번째 ‘실크로드 ‘별 酒’라는 주제의 글은 사막에서의 여행의 낭만과 사유가 한 편의 동화처럼 펼쳐져 있다.

작가가 여행 중 만난 사막의 밤은 신비로우면서도 환상적이었다. 김 작가는 질박한 작은 잔에 우리네 막걸리와 흡사한 ‘창’을 가득 붓고 깜짝 놀랐다. 잔에 시리얼처럼 별들이 가득 차올랐던 것이다. 그는 ‘광주로 띄우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별이 가득한 잔을 그대로 마셨다간 뾰쪽한 별들로 인해 목에 상처를 입을까봐 입으로 호호 불며 별들을 밀쳐내고 술을 마셨지. 얼큰하게 누운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캄캄한 우주의 한켠에 떠있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어.”

사막에서 그는 시인이자 몽상가였으며 철학자였다. 아니 ‘별’을 마시는 ‘어린왕자’일 수도 있겠다.

예술가에게 여행은 그저 그런 떠남이 아니다. 무한한 자유와 미지의 풍경,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다.

김해성 작가가 최근 펴낸 여행스케치 ‘길을 걷다 줍는 별’(사월)은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 단상 등이 아름다운 스케치로 갈무리돼 있다. ‘그림이 되고 기억이 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해외여행에서 만난 “작은 별빛 같은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김 작가의 첫 해외여행은 러시아 횡단과 북유럽 3국이었다. 그에 따르면 계획이 틀어져 핀란드까지 갔다가 여행경비가 바닥나 돌아서는 아쉬움을 겪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35일간 낯선 땅을 밟으며 보낸 나날은 그 자체로 흥분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배낭여행이라고 하지만 30여 일 넘는 기간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 시절엔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술과 간식을 나누었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요. 술안주 냄새에 이끌려 대형 견이 어슬렁거리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웃음)”

첫 해외여행 이후, 김 작가는 틈만 나면 배낭을 메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사진작가 박하선과 아시아 오지를 다니며 또 다른 세계의 이면을 보았다. 그러다 박 작가가 조직한 ‘문명의 저편 여행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아시아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아다녔다.

여정은 또 다른 여정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의료봉사팀과 함께하게 됐고, 김 작가는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학교에 벽화를 그렸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림’이 있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 모습은 나를 벅차게 했다”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들조차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여행은 점점 타자를 위한 맞춤형으로 진화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는 계획은 ‘같이/ 가치 나눔여행단’이라는 기획을 태동시키기에 이른다. 2019년 첫 1기 캄보디아 나눔여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기 스리랑카 여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여행스케치’는 여행과 여정 가운데 길어 올린 몇 편의 기억이 모티브가 됐다.

“그 기억들은 단지 지나간 여행의 일부가 아닌 내 삶의 일부이고 내 마음의 풍경이지요. 오지 마을에서 만난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미소,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눈빛, 낯선 이방인을 말없이 품어주던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눈동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책에는 티베트, 러시아, 미얀마, 히말라야,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의 여정과 사유, 만남과 감성 등이 담겨 있다. 글은 시적인 감성을 발하며, 그림은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과 사람,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넉넉하며 즉흥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활달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산간 벽지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들어간 미얀마 어느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행복의 의미를 숙고한다. 어디서든 순박한 웃음을 짓는 그들에게서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마치 “길을 걷다 우연히 발끝에서 주운 작고 빛나는 보석처럼, 혹은 인생이라는 밤하늘 아래 뜻밖에 마주한 별빛 같은” 울림을 전해준다.

한편 김 작가는 조선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조선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개인전을 비롯해 쾰른 아트페어, 아트베이징, 중앙미술대전 수상작가 초대전 등에 참여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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