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쯤 완벽을 느낄 수 있을까요? - 이민준 동신대 한의학과 2년
2025년 07월 29일(화) 00:00
흔히들 청춘은 찬란하다고 한다. 어디를 봐도 가능성이 넘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며 모두들 부러워한다. 그러나 정작 그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청춘은 꼭 그렇게 찬란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면 SNS 속 다른 이들의 번쩍이는 삶이 나열되어 있다. 이들의 삶을 감상한 후 거울을 보면 그날따라 낯선 사람이 서 있곤 한다. 매일매일은 ‘같은 청춘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로 시작한다.

친구의 화려한 일상, 감성 가득한 여행 사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들인 공부 인증 샷까지.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 20대 청년들은 스스로를 점점 더 작은 존재로 만든다. 기준은 언제나 ‘남’이고, 기준선은 매일 더 높아진다. 현실은 불안정하고 고단한데, 소셜미디어 속 사람들은 너무나 빛나 보인다. 그 간극은 때로 무력감으로, 때로는 자기혐오로 바뀐다.

그래서 집에만 있고 싶어진다. 불완전한 나를 드러내기 싫어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어디에도 나서기 두렵다. 반대로, 밖에 나가면 또 다른 ‘보여주기’가 시작된다. 잘 웃고, 잘 차려입고, 나를 괜찮은 사람처럼 포장하는 일. 어디에도 진짜 나는 없다. 우리의 청춘은 점점, ‘완벽하게 보이기 위한 쇼윈도’가 되어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다른 이들과 같은 선상에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올린 사진은 누군가의 눈에 좋아 보이기 위한 것이었고, 내가 고른 말투는 누군가의 감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를 골라도, 여행을 갈 때도, 그 모든 행동을 할 때 좋아요를 더 받기 위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 후에 행동했다. 진정한 ‘나’를 깊은 심연 어딘가로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흔히 말하는 SNS에서 성공한 옛 친구를 만났다. 속으로는 ‘성공한 사람의 여유’를 기대했지만, 그 친구의 행동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니 생활패턴도, 소비패턴도 평범한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부러워하고 주눅 들었던 삶이, 그저 연출된 일부 장면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경우만 해도, 내가 올린 사진은 누군가의 눈에 좋아 보이기 위한 것 아니었던가. 이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기루에 불과한 완벽에 대한 선망은 자기혐오와 불안감을 일으키고 이것은 종종 우울함으로 이어진다. 끝없는 비교와 인정 욕구 속에서 지쳐가는 우리에게 남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공허함일 때가 많다. 그러나 우울함이란 단순히 무기력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이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지금 20대를 사는 많은 청춘들에게 완벽은 환상이다. 우리가 SNS 속에서 찾으려는 완벽은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인 것이다.

청춘은 원래 날 것 그대로 불안정하고 거칠며, 실패하고 방황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 시간 속에서 느끼는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은 사실 모두가 함께 겪는 집단적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의 나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연습을 해보자. 그 연습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남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속도와 감각으로 살아가는 진짜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20대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순간부터, 비로소 본래 의미의 靑春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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