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필생의 업(業)을 조금씩 해나감으로써 준비하고 ㅡ 괴테의 드라마 ‘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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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은 지난 몇 년 번역해온 괴테의 ‘드라마 선집’의 교정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괴테의 드라마는 대개 그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이다. 괴츠, 타소, 이피게니에, 에그몬트, 프로메테우스, 마호메트, 판도라, 클라뷔고, 콥타…등등. 60여년을 쏟은 대작 ‘파우스트’ 역시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에서도 베르테르며 빌헬름 마이스터 등 인물들이 제목에 등장한다. 그밖에도 참으로 뚜렷한 인물상들이 제각기 나름의 특성을, 장점과 약점을 얼마나 선명하게 지니고 있는지 괴테의 전체 작품을 둘러보자면 마치 인물상들이 가득 진열된 갤러리에 들어선 것만 같다.
글쓰기 작업이 치열한 인간탐구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양한 인물들을 그렇게 조각상처럼 구성하고 재구성해내자면 그 하나 하나의 마음과 머리 속으로 그야말로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호기심과 탐구심,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작업을 하다보면 다시금 인물 하나 하나가 쓰는 사람에게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어떤 면은 본받으려 했을 것이고, 어떤 면은 경계했을 것이고, 그들이 겪는 파국은 스스로 피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작품 하나 하나가 특히 드라마 작품은 다시금 큰 인물 괴테의 한 구성 성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괴테가 자신과 가장 동일시했던 ‘토르콰토 타소’(1790)는 재능있고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의 현실과의 충돌을 보여주며 열정적 주관성이 처하는 위험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소재가 된 인물은 16세기 이탈리아 페라라의 궁정시인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로 십자군시대를 다룬 대표작 ‘해방된 예루살렘’으로 당대에는 호메로스를 능가할 만치 읽혔으나, 시인의 존재가 제후의 비호에 의해 유지되던 현실에서, 때로 영광도 누렸지만 여러 궁정을 전전하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정신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괴테의 ‘타소’는 타소가 그 문제의 책의 원고를 탈고하여 페라라 제후 알폰소 공작에게 바치는 어느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등장인물도 다섯명 뿐이다. 페라라 공작, 시인을 아끼는 공주와 그 친구인 시녀, 노련한 현실정치인 안토니오 그리고 열정과 감수성 뿐인 타소이다.
무대인 아름다운 정원에서 오래 기다린 원고를 마침내 탈고하여 제후에게 바치며 타소는 월계관을 받는다. 그때 등장한 안토니오가 제후 일가의 비호를 받는 타소를 질투한다. 그러면서 촉발되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 그로 인한 한 재능있는 시인의 파멸이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그럼에도 매우 정제된 운문에 실려 있어서 갈등은 일견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했을 정도로 타소라는 인물에는 괴테 자신이 많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 괴테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도 바로 이 ‘타소’였다.16세기 이탈리아 페라라의 궁정시인 타소를 그리고 있지만 페라라는 실은 18세기 독일의 작은 바이마르 궁정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협소한 궁정 세계의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시인 괴테가 겪는 문제, 아마 처할 수도 있었을 위기가 이러한 작품을 씀으로써 극복될 수 있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청년 괴테가 4주일간 미친 듯이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문제들을 감내하고 극복했던 것처럼 말이다.
괴테의 시 전집에도 ‘예술가 시편’이라는 별도의 묶음이 있을 만큼 예술가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문제들을 젊은 괴테는 다각도로 치열하게 점검한다. 시인이 세상에서 감내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바로 작품을 쓰면서 철저히 성찰하고, 그러면서 글도 쌓아 갔다. 정치가로, 여러 분야의 자연과학자로 많은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긴 세월의 꾸준한 매진으로 그가 어려서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 ‘시인의 머리 위에 얹힌 월계관’ 도제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기울였던 진정한 깊은 관심이 그를 원숙한 큰 사람으로 키운 것 같다.
신중히 택한 필생의 업(業)을, 다름아니라 조금씩 해나감으로써 준비하는 모습, 그러면서 얻어지는 성찰의 깊이와 높이가 아름답다. 18세기에만 가능했던 일일까.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괴테의 ‘타소’는 타소가 그 문제의 책의 원고를 탈고하여 페라라 제후 알폰소 공작에게 바치는 어느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등장인물도 다섯명 뿐이다. 페라라 공작, 시인을 아끼는 공주와 그 친구인 시녀, 노련한 현실정치인 안토니오 그리고 열정과 감수성 뿐인 타소이다.
무대인 아름다운 정원에서 오래 기다린 원고를 마침내 탈고하여 제후에게 바치며 타소는 월계관을 받는다. 그때 등장한 안토니오가 제후 일가의 비호를 받는 타소를 질투한다. 그러면서 촉발되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 그로 인한 한 재능있는 시인의 파멸이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그럼에도 매우 정제된 운문에 실려 있어서 갈등은 일견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했을 정도로 타소라는 인물에는 괴테 자신이 많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 괴테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도 바로 이 ‘타소’였다.16세기 이탈리아 페라라의 궁정시인 타소를 그리고 있지만 페라라는 실은 18세기 독일의 작은 바이마르 궁정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협소한 궁정 세계의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시인 괴테가 겪는 문제, 아마 처할 수도 있었을 위기가 이러한 작품을 씀으로써 극복될 수 있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청년 괴테가 4주일간 미친 듯이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문제들을 감내하고 극복했던 것처럼 말이다.
괴테의 시 전집에도 ‘예술가 시편’이라는 별도의 묶음이 있을 만큼 예술가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문제들을 젊은 괴테는 다각도로 치열하게 점검한다. 시인이 세상에서 감내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바로 작품을 쓰면서 철저히 성찰하고, 그러면서 글도 쌓아 갔다. 정치가로, 여러 분야의 자연과학자로 많은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긴 세월의 꾸준한 매진으로 그가 어려서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 ‘시인의 머리 위에 얹힌 월계관’ 도제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기울였던 진정한 깊은 관심이 그를 원숙한 큰 사람으로 키운 것 같다.
신중히 택한 필생의 업(業)을, 다름아니라 조금씩 해나감으로써 준비하는 모습, 그러면서 얻어지는 성찰의 깊이와 높이가 아름답다. 18세기에만 가능했던 일일까.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