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폭염 시름…여름 한참 남았는데 “夏~ 두렵다”
빠른 폭염에 지쳐가는 광주·전남
들녘도 가축도 사람도 숨이 턱턱
병해충 조기 발생·과일 열과 피해
닭·돼지 등 가축 8만여마리 폐사
과수농 종일 물 뿌리고 밤중 작업
축사 냉방·환기장치 24시간 가동
열대야 벌써 9차례 ‘잠 못드는 밤’
2025년 07월 09일(수) 19:20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9일 광주시 광산구 동곡동 들녘에서는 농민이 한낮의 열기를 견디며 뜬모 작업에 나섰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유례없이 빠른 폭염으로 농작물, 양식장, 축사 등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며 지역 농가가 비상에 걸렸다.

벼멸구 등 병해충이 일찍 발생하고, 과일이 터지고(열과)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농민들이 폭염 피해 대처를 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생산비가 올라 수지 맞추기 힘든데, 이른 폭염에 대응할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해 근심도 커지고 있다.



◇ 밤중 작업에 24시간 냉방=함평군 손불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고산(41)씨는 최근 낮과 밤이 바뀌었다. 폭염 때문에 낮 시간 동안 작업을 하기 힘든데다 노린재나 나방 유충 등 밤에 등장하는 해충 발생 빈도가 늘어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밤중 작업’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해가 지고 저녁 8시쯤에 방제작업을 들어간다. 열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몰라 칼슘 등 영양제를 같이 뿌려주고 있다”며 “열기를 낮추려고 종일 물을 뿌리는 농가도 있는데, 노지에 살수시설을 설치하자니 비용도 어마어마하고 전기 선부터 설치해야 하는데다 시설 유지도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축산농가도 연일 무더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육장 온도가 치솟으며 가축들 폐사 위험이 높아졌고, 가축들의 사료 섭취량도 눈에 띄게 줄고 있어 애가 타는 것이다. 특히 돼지는 땀샘이 없어 열을 배출하지 못하고, 고온 스트레스에 취약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농가들이 적지 않다.

장성에서 양돈장을 운영 중인 오재곤 전남한돈협회 회장은 “42년 동안 돼지를 키웠지만 이런 더위는 처음 겪는다”며 “현대화된 시설을 갖췄음에도 사료 섭취량이 20~30% 줄어들고, 아침에만 잠깐 먹고는 하루 종일 누워만 있다”고 토로했다.

오 회장은 폐사만은 막자는 마음에 선풍기를 비롯한 냉방·환기 장치를 24시간 가동하고 있지만, 더위 앞에선 역부족이라고 한다.

오 회장은 “에어컨과 쿨링시스템을 밤낮 없이 가동해도 3~5도 떨어지는 게 고작”이라며 “돼지들이 사료를 먹지 않으니 비육이 안 돼 출하도 어렵고, 농장 안에서 순환이 멈추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냉방시설 설치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가축들도 헉헉=무안군 망운면에서 8만마리의 닭을 키우는 김화실 전남양계협회 회장은 닭이 마시는 물에 비타민C, 해열제, 대사 촉진제 등을 넣어 주고 있다. 김 회장은 “환기 시설과 쿨링 패드를 활용해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고온 다습해서 닭들의 폐사 위험도 높다”며 “다른 농가에서는 스프링쿨러, 안개분무 장치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영암군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 중인 한 농장주도 양계장에서 스프링클러와 환기 팬을 종일 틀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요즘처럼 고온다습한 날에 스프링클러를 틀었다가 오히려 습도만 올라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농장주는 “습도가 높을 땐 물을 뿌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일시적으로는 시원하지만, 습도까지 올라가면 닭들이 더 위험해진다”며 “닭들이 사료를 덜 먹다 보니 알도 덜 낳고, 크기나 품질도 평소보다 떨어진다. 요즘은 산란율이 평소보다 10% 이상 줄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9일 전남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폭염으로 인해 18개 시·군 138개 농가에서 닭·돼지·오리 등 가축 총 8만1515마리가 폐사해 12억86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양계 농가 41곳에서 7만3343마리의 닭이 폐사했고, 오리 5003마리(농가 7곳), 돼지 3169마리(농가 90곳)가 폐사했다. 9일 하루에만 닭, 오리, 돼지 등 2만여마리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 빠른 병해충에 방제 비상=폭염으로 벼멸구가 발생도 앞당겨졌다. 전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첫 비래 시기 지난달 5일께로 지난해(6월 20일께)보다 15일 빨리 발생했다. 최근 이어진 폭염과 고온의 영향으로 해충의 1세대 번식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벼멸구 발생이 빨라진 만큼 생산량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농가의 방제 작업도 신속히 이뤄져야 하니 일손 부족한 농촌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열대야 현상도 지난 8일까지 총 9차례 발생하는 등 ‘잠 못 이루는 밤’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밤에는 광주 26.3도, 여수 25.8도, 광양 25.6도, 영광 25.2도, 담양 25.1도, 목포 25도 등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열대야 현상은 광주를 기준으로 지난달 19일 처음 발생했는데, 이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39년 이래 가장 빨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밤에도 에어컨을 켠 채 잠드는가 하면, 체육공원 등에서 늦은 밤까지 더위를 식히다 가는 주민들도 많아지고 있다.

광주지방기상청은 “12일까지 동해북부해상에 자리한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고 맑고 더운 날씨가 지속되겠다”고 예보했다. 10일 낮최고기온은 32~35도까지 오를 전망이며, 11일은 아침최저기온 22~25도, 낮최고기온 30~34도로 예상된다.

9일 오전 10시께 목포, 신안도 폭염경보로 격상되면서 진도, 거문도·초도, 흑산도·홍도에 폭염주의보를 제외한 광주·전남에 폭염경보가 발효돼 유지중이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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