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V 그리고 훈이와 영희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2025년 07월 09일(수) 00:00
얼마 전 광주시립예술단 예술감독 중 한 명이 공연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가입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차기 지방선거와 관련된 행보였을 터다. 문화예술 정책 개발에 참여하거나 관련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작품에 참여하는 예술인들에게 정당 가입 서류를 내미는 모습이라니. 선거철만 되면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줄대기’하는 모습을 봐왔지만 예술인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 씁쓸했다.



권리당원 모집하는 예술감독

임기 만료를 앞둔 일부 시립 예술감독들이 재신임을 위해 ‘대놓고’ 뛰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하필 그 이야기를 들은 며칠 후 해당 단체의 작품을 보러갔다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 민간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막대한 예산을 쓰는 시립 단체의 무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연은 형편 없었다. 작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곳에 한눈 팔고 있는 예술감독이 괜히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최근 발표된 내년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놓고 ‘한자리씩’ 노리는 사람들의 눈치경쟁이 치열해졌다. 일찌감치 노선을 정한 이들과 뒤늦게 뛰어든 이들 모두 계산기 두드리기 바쁘고, 누구 누구 캠프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방 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운영 철학을 완수하기 위해 캠프 등에서 함께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을 중용하는 게 비판 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을 ‘식구’라는 이유로 공공기관 등의 자리에 꽂는 일이다. 때론 국회의원 등 실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문화체육부장관의 알박기 인사였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사장 임명은 장관과의 인연이 영향을 미쳐 구설수에 올랐다.

인맥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노랫말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내 정설은 언제나 현실이 되고, 그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선례는 또 다른 선례를 낳고 학습효과를 제대로 경험한 이들은 점점 더 인맥에 목을 매며 캠프를 기웃거린다. 문제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느끼는 허탈감이다. 아예 일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선을 대는 일’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게 먹힌다는 사실에 자괴감에 빠진다. 전문가적 역량을 바탕 삼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승부하는 것은 이제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이 꼭 민간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공직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4급 사무관으로 퇴직한 전직 공무원이 쓴 ‘나라를 위해서 일 한다는 거짓말’을 인상깊게 읽었다. 그는 공직 사회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했는데, 중앙부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좁혀 보면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의 문제로도 읽힌다. ‘시민을 위해, 도민을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는지 한번 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얼마 전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문화계 인사의 만남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어쩌다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였다. 사회자가 토니상 6개 부문 수상과 관련 소감 등을 물으며 어필할 시간을 줬지만, 그가 자신을 내세우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연극계의 해외진출 방안 등을 조목조목 제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지역의 모습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캠프 줄서기와 인사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인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정책 과제 수행을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공직사회와 관련해 “로봇 태권V 비슷해서 그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며 “결국은 그 헤드, 조종간에 철수(‘훈이’를 착각)가 타면 철수처럼 행동하고 영희가 타면 영희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태권 브이를 조종하는 훈이와 영희처럼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재명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직 단체장, 차기 출마자와 리더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들이 새겨야할 말이다.

지역의 미래를 견인할 자치단체장이라면 조종석에 앉힐, 능력있는 ‘훈이와 영희’를 발탁하고 기용하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로보트의 작동원리인 태권도를 잘 아는 훈이가 조종석에 앉아야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저 내 사람이라고 태권도에 문외한인 누군가를 조종석에 앉힌다면 태권V는 패배만 거듭한 채 격납고에서 녹슬어갈 것이다. 어쩌면 철이가 주전자로 만든 깡통로봇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깡통로봇은 귀엽기라도 하다.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인구소멸 위험지역이 된 부산광역시는 최근 ‘노인과 바다’, ‘노인과 아파트’라는 자조적인 별칭으로 불린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아파트는 많고, 기업체는 없고 바다만 있는, ‘발전을 멈춰버린 도시’라는 의미다.

슬프게도 광주·전남의 현재 모습 역시 부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실수를 반복할 시간이 없다. 지역 발전을 위한 희망가를 부르려면 우리 모두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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