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시간창, 7~9세 아이를 위하여 - 한미경 하늘퍼블리싱 대표
2025년 07월 08일(화) 00:00
“독일 그림책은 왜 그렇게 글밥이 많아요?”

“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읽는 책이거든요. 학교 오기 전 글자 교육은 하지 않아요.”

발도르프 교육 그림책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7세 고시’라는 신조어가 있는 대한민국은 유아기부터 글자 교육과 읽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정작 초등학교 때 만화책에 빠지고 고학년이 되면 유튜브로 시선을 돌린다. 문자를 일찍 깨치더라도 문해력과 사고력은 뒤로 밀린다. 글자를 일찍 깨쳤는데 오히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왜일까?

7세 이전은 아이가 신체 장기를 형성해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깨끗한 공기, 안전하고 아름다운 환경,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이다. 아이를 둘러싼 성인들은 존재 자체로 모범이 되고 아이는 어른을 통해 세상을 체득한다.

대략 7세에 도달하였을 때 아이는 이갈이를 함으로써 성장의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었음을 알린다. 이 시기에 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만나는 글자가 단순 기호가 아니라 형태와 아름다움으로 이야기 되는 순간이다. 아이는 직선과 곡선을 통해 문자가 지닌 아름다움과 힘을 체득한다. 책만 읽는 어린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책읽는 습관을 가진 어린이로 키우는 데는 많은 책보다 적은 책이 좋으며 자주 읽는 것보다 하루에 한 번 자기 전 등과 같이 일정한 시간에 읽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삽화가 함께하는 그림책은 아이의 영혼 속 깊은 곳에 감동과 여운으로 자리 잡는다. 어린이가 아름다운 그림에 흠뻑 빠져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어린이가 글자를 뗀 뒤에도 부모가 충분히 읽어주는 것이 좋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1학년 때 직선과 곡선을 익히며 형태의 힘을 체험한다. 몸으로 움직이고, 공간에서 그리고, 종이 위에 옮기며 문자의 세계로 서서히 들어간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가진 본질과 친해지는 내적 체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쓰기 이전에 읽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쓰기는 온몸으로 하는 활동임에 반해 읽기는 머릿속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머릿 속으로만 하는 활동은 폐쇄적이고 가두어버리거나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다. ‘책만 읽는 아이’라는 이면에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신체활동이 적은 아이’라는 그림자가 있게 되는 이유다.

한편 그림 형제 동화나 한국 전래동화처럼 ‘성장의 이야기’는 아이의 내면 속 자양분이 된다. 9세를 통과하며 아이는 새로운 내면의 문턱에 선다. 빌리 콜린스의 시처럼 아이는 ‘상상의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두 자릿수의 나이로 접어드는 순간’을 맞는다. 내면 속 빛은 여전히 밝지만 무릎이 까지고 피를 흘리는 순간도 찾아오는 시기이다.

아이는 첫 상실과 자각 속에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7세에서 9세까지의 시간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문자 체험을 충분히 해본 아이들은 9세 이후의 현실의 문턱도 자연스럽게 넘어설 수 있다. 조기 문해 교육이 아니라 아름다운 독서체험이 내면 속에 잘 자리잡게해준 이 시기가 아이들을 평생 ‘책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 문자가 강압과 무거운 학습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풍요롭게 해주고 믿음직한 표현도구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어린이를 사랑한다면 조기교육에 애를 쓰기보다 만 7세에서 9세, 이 첫 3년의 ‘마법의 시간창’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안내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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