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신문에 실렸던 기억 아련…문학의 길로 들어선 큰 계기”
호남예술제 70년 <10>호남예술제를 빛낸 예술가 - 고재종 시인
‘문학들’ 초대 주간 역임…시집 등 20권 발간, 유수의 문학상 수상
호남예술제 70년 큰 의미…인문학 등 기초예술 국가 차원 지원 필요
‘문학들’ 초대 주간 역임…시집 등 20권 발간, 유수의 문학상 수상
호남예술제 70년 큰 의미…인문학 등 기초예술 국가 차원 지원 필요
![]() 고재종 시인은 호남예술제 수상 경험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돌이켜보면 문학을 하게 된 것은 호남예술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 신문에 실렸는데 저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됐지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호남예술제 참가와 수상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재종 시인은 중학교 때 참가한 호남예술제에서 산문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당시 시대상을 학생의 시선으로 표현한 ‘새마을길’이라는 작품이었다.
고 시인은 “70년대 초중반 새마을운동으로 변화되는 마을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라며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을 개량하는 장면을 글로 표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운동이 다소 문제되는 부분도 있었다”면서도 “당시 중학생 눈으로는 마을이 새롭게 변모되는 부분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즈음 시골학교에서는 분야별로 몇 명씩을 뽑아 호남예술제에 나갔다.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광주공원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며 “대부분 도시에 사는 애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골 ‘촌놈’이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은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또한 “호남예술제가 한 해도 중단하지 않고 70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역사”라며 “앞으로도 지역을 넘어 전국의 대표 예술제로 명성을 지속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담양 출신의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시집과 시론집, 산문집 등 모두 20권의 책을 펴냈으며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그에게 호남예술제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청소년 시절에 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예술제가 끝난 며칠 후 학교에서 수상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게 됐어요. 얼굴과 글이 실린 신문이었죠. 장학금까지 받게 되자, 막연히 글을 쓰는 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호남예술제 수상으로 어느새 ‘마을 유지’가 돼 있었다. 또 하나 잊지 못할 기억도 있다. 반 짝꿍의 누나가 어떻게 알았는지 수상 소식을 듣고는 빵을 사주며 격려까지 해주었다. 학교와 지인분들의 칭찬과 격려로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의 꿈을 꾸게 된다.
그러나 죽세공 하나로 생계를 연명해야 하는 가난한 형편 탓에 장학금을 받고 읍내 농고에 입학해야 했다. 그마저도 얼마 후 그만 두게 된다. 사춘기 시절 카프카의 ‘변신’을 비롯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스탕달의 ‘적과 흑’과 같은 세계문학을 탐독했던 그에게 축산이나 수산 등과 관련된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어진 기나긴 방황과 서울살이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 젊은 시절은 흔들림의 시간이었다. 그런던 어느 날, 창비판 시집 두 권을 보게 되면서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중학생 때 호남예술제에 참가해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창작 시들이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실림으로써 마침내 그는 ‘시인’이 된다. 호남예술제 출신 학생 문인은 비로소 문인이라는 ‘명함’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 등의 시집을 펴내며, 그는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일궈왔다. 또한 틈틈이 광주가톨릭센터와 대학의 평생교육원 등에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문단 선후배, 애독자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며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종합문예지 ‘문학들’ 창간에 참여해 초대 편집주간을 맡아 지역 문학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한편으로 그는 문학을 비롯해 읽기 문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쇠퇴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무리 영상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원텍스트는 문학과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론이다.
“국가 차원에서 문학을 비롯한 기초 예술에 대한 정책을 과감하게 펼쳐야 합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문학이 가진 힘, 기초예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단면이었지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통이 있는 예술제 등은 지원해야 기초 예술도 살고 문화도 삽니다.”
그는 최근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문학들)을 펴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집을 독서당이자 집필실로 쓰며 꾸준히 창작과 읽기를 병행한 결과다.
시인의 하루는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을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달에 20여 권의 책을 사서 읽을 만큼 독서는 중요한 일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경에도 관심이 많은데 관련 책들을 찾아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향후에는 불교적인 사유를 담은 작품을 펴낼 계획입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
고재종 시인은 중학교 때 참가한 호남예술제에서 산문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당시 시대상을 학생의 시선으로 표현한 ‘새마을길’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운동이 다소 문제되는 부분도 있었다”면서도 “당시 중학생 눈으로는 마을이 새롭게 변모되는 부분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즈음 시골학교에서는 분야별로 몇 명씩을 뽑아 호남예술제에 나갔다.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광주공원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며 “대부분 도시에 사는 애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골 ‘촌놈’이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은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담양 출신의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시집과 시론집, 산문집 등 모두 20권의 책을 펴냈으며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그에게 호남예술제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청소년 시절에 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예술제가 끝난 며칠 후 학교에서 수상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게 됐어요. 얼굴과 글이 실린 신문이었죠. 장학금까지 받게 되자, 막연히 글을 쓰는 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죽세공 하나로 생계를 연명해야 하는 가난한 형편 탓에 장학금을 받고 읍내 농고에 입학해야 했다. 그마저도 얼마 후 그만 두게 된다. 사춘기 시절 카프카의 ‘변신’을 비롯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스탕달의 ‘적과 흑’과 같은 세계문학을 탐독했던 그에게 축산이나 수산 등과 관련된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어진 기나긴 방황과 서울살이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 젊은 시절은 흔들림의 시간이었다. 그런던 어느 날, 창비판 시집 두 권을 보게 되면서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중학생 때 호남예술제에 참가해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창작 시들이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실림으로써 마침내 그는 ‘시인’이 된다. 호남예술제 출신 학생 문인은 비로소 문인이라는 ‘명함’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 등의 시집을 펴내며, 그는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일궈왔다. 또한 틈틈이 광주가톨릭센터와 대학의 평생교육원 등에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문단 선후배, 애독자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며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종합문예지 ‘문학들’ 창간에 참여해 초대 편집주간을 맡아 지역 문학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한편으로 그는 문학을 비롯해 읽기 문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쇠퇴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무리 영상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원텍스트는 문학과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론이다.
“국가 차원에서 문학을 비롯한 기초 예술에 대한 정책을 과감하게 펼쳐야 합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문학이 가진 힘, 기초예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단면이었지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통이 있는 예술제 등은 지원해야 기초 예술도 살고 문화도 삽니다.”
그는 최근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문학들)을 펴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집을 독서당이자 집필실로 쓰며 꾸준히 창작과 읽기를 병행한 결과다.
시인의 하루는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을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달에 20여 권의 책을 사서 읽을 만큼 독서는 중요한 일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경에도 관심이 많은데 관련 책들을 찾아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향후에는 불교적인 사유를 담은 작품을 펴낼 계획입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