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미식가’로 거듭나기-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5년 07월 04일(금) 00:00
더운 여름, 시원한 물에 밥을 말고 반찬으로는 재래식 된장에 풋고추 찍어서 먹어 본 적이 있던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것은 상당히 단출하면서도 정감 있어 보인다. 어제는 이른 더위에 입맛도 없고 더위를 견디느라 몸도 지치고 입안이 그만 헐어 버렸다.

뜨겁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은 피하고 싶은데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떠올려 보니 시원한 콩국수가 제격이겠구나 싶었다. 즉시 국수를 삶아 시원한 물로 씻어 내고 미리 사둔 냉장고 안의 콩물을 충분히 부었다. 설탕이냐 소금이냐 뭐 말도 많지만 나는 두 가지 다 넣었다. 그리고 고명으로 오이를 조금 채 썰어 올렸다. 그리고 깨소금 솔솔 뿌리고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맛도 있지만 뿌듯함도 들었다.

불현듯 요한복음 21장 장면이 떠올랐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숯불에 생선을 구워서 아침까지 물고기를 잡느라 춥고 배고픈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으라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여 제자들에게 먹이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비록 풍성하지 않고 초라한 식탁이었지만 제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으리라 여겨진다. 예수님의 생선과 떡으로 준비한 아침 식탁을 볼 때 우리는 ‘충만’이라는 단어를 무엇인가가 가득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상태로만 상상했던 것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싶다. 끊임없이 채워지고 흘러넘치는 것이 있어야만 비로소 ‘영적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많이 먹어 배부른 것과 진정으로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며 깊은 만족을 얻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영적인 ‘배부름’과 ‘진정한 만족’ 사이의 간극을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아간다. 성경말씀 많이 읽기, 기도 오래 하기, 되도록 많은 예배나 집회 참석하기 등 신앙 활동의 양적 지표만을 쫓다 보면 정작 우리 영혼이 갈망하는 깊은 맛과 만족을 놓치기 십상이다.

넷플릭스 인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는 단순히 양이 많은 것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깊은 맛을 가진 요리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미식의 세계는 푸짐한 양보다는 질적으로 맛있는 것에 대한 평가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우리는 단순히 많이 먹는 것을 넘어 적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의미를 음미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성경 한 구절이라도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이 중요하다. 또한 기도의 양만을 채우기보다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임재를 경험하고 위로와 평안을 얻는 것이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준다. 예배의 현장에서도 단순히 의무감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그분과 온전히 연결되는 질적인 경험을 추구해야 한다.

아모스 8장 11절에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우리의 영혼이 영적으로 목마르다면 이러한 영적인 기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을 회복할 수 있다. 이는 뷔페식으로 이것저것 맛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필요로 하고 만족을 줄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 헤매는 미식가의 모습과 같다. 이러한 갈망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깊이 이끌고 피상적인 만족이 아닌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에 달려 있음을 깨닫는 여정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양적인 ‘배부름’을 넘어 질적인 ‘만족’과 ‘맛’을 추구해야 한다. 때로는 비움과 절제가 더 큰 충만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한정식처럼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진 풍성함의 만족도 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양은 비록 적지만 정갈하고 미와 맛을 중시하는 파인 다이닝이 있다. 유명 쉐프가 음식을 준비하며 핀셋으로 정밀하게 요리를 마무리 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만족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넘치고 풍성한 은혜만 쫓겠는가. 아니면 나만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맛있는 은혜를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님의 조반을 경험한 제자들처럼 주께서 사랑으로 준비한 것들을 경험하는 영적 미식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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