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28년간 헌혈”
헌혈 500회 달성 복지부장관 표창 받은 북구청 김병두 주무관
호남대 법학과 재학 시절 국제 로터리 클럽 ‘로타랙트’ 활동
졸업 후 취준생 시절 기부·현장 봉사 대신 2주에 한번 헌혈
헌혈증 100장 모일때마다 기부…“69세까지 꾸준히 할 생각”
호남대 법학과 재학 시절 국제 로터리 클럽 ‘로타랙트’ 활동
졸업 후 취준생 시절 기부·현장 봉사 대신 2주에 한번 헌혈
헌혈증 100장 모일때마다 기부…“69세까지 꾸준히 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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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때 처음 헌혈을 했던 김병두(51) 광주 북구청 복지관리과 주무관은 28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주 간격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헌혈 횟수는 514회, 채혈액은 257ℓ에 달한다. 그는 헌혈증 400장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등에 기부했다.
오랜 기간 헌혈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김 주무관이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헌혈 유공 표창장을 수상했다.
호남대 법학과 출신의 그는 대학생 때부터 국제로터리 클럽 ‘로타랙트’ 회원으로 활동하며 무등육아원, 실로암 등에서 봉사했다. 헌혈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봉사의 일환으로 헌혈 캠페인에 참여하면서였다.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싶어 로타랙트에 들어왔다는 동신대 선배와 친하게 지냈어요.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TV 프로그램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서 수년간 소년 가장을 후원해 대학까지 보낸 익명의 복지가로 그 선배의 모습을 다시 보게됐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도 사회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취업 준비생의 신분으로 돈도, 시간도 없었던 그는 기부나 현장 봉사 대신에 헌혈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혈액 전체를 채혈하는 전혈이 아닌 혈소판 등 특정 성분만 채혈한 뒤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돌려주는 성분헌혈을 선택했다. 전혈은 8주마다, 성분헌혈은 2주마다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광주와 전주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10년간 일했던 그는 2015년 40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 현재 광주 북구청 사회복지직 7급 공무원으로 근무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정기 후원과 기부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사회복지 분야 전문성을 살려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목재소 사장님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사장님은 동네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간호하고 아이들에게는 간식 사 먹으라며 용돈을 쥐어주셨죠. 또 시험에 떨어진 형·누나들에게는 삼겹살을 사주고 격려해주시던 분이었어요. 어린 나이었지만, 그 때 사장님의 나눔이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것을 내놓았던 목재소 사장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도 헌혈을 실천해왔다. 헌혈을 500회 넘게 했지만 같은 부서 직원들조차 정기적 헌혈 사실을 몰랐을 만큼 조용히 나눔을 이어왔다.
그는 헌혈을 하기 위해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꾸준히 하루 1만 보를 걷고, 철봉과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과 근력을 관리하고 있다. 헌혈 시 피검사를 통해 빈혈과 혈압, 맥박 체크도 할 수 있어 헌혈 후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 주무관은 “인공장기는 발명이 됐지만 혈액은 아직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헌혈이 가능한) 69세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헌혈로 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오랜 기간 헌혈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김 주무관이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헌혈 유공 표창장을 수상했다.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싶어 로타랙트에 들어왔다는 동신대 선배와 친하게 지냈어요.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TV 프로그램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서 수년간 소년 가장을 후원해 대학까지 보낸 익명의 복지가로 그 선배의 모습을 다시 보게됐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도 사회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광주와 전주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10년간 일했던 그는 2015년 40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 현재 광주 북구청 사회복지직 7급 공무원으로 근무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정기 후원과 기부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사회복지 분야 전문성을 살려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목재소 사장님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사장님은 동네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간호하고 아이들에게는 간식 사 먹으라며 용돈을 쥐어주셨죠. 또 시험에 떨어진 형·누나들에게는 삼겹살을 사주고 격려해주시던 분이었어요. 어린 나이었지만, 그 때 사장님의 나눔이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것을 내놓았던 목재소 사장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도 헌혈을 실천해왔다. 헌혈을 500회 넘게 했지만 같은 부서 직원들조차 정기적 헌혈 사실을 몰랐을 만큼 조용히 나눔을 이어왔다.
그는 헌혈을 하기 위해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꾸준히 하루 1만 보를 걷고, 철봉과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과 근력을 관리하고 있다. 헌혈 시 피검사를 통해 빈혈과 혈압, 맥박 체크도 할 수 있어 헌혈 후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 주무관은 “인공장기는 발명이 됐지만 혈액은 아직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헌혈이 가능한) 69세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헌혈로 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