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 - 송민석 수필가·전 대학 입학사정관
2025년 07월 01일(화) 22:00
오래전 일이다. 56년 전 ‘국군의 날’ 기수단에 뽑혀 서울 시민의 환호 속에 꽃목걸이 걸고 여의도에서 동대문까지 시가행진을 한 적이 있다. 행사 후 보상 휴가를 받아 시골집에 다녀왔다. 당시 월남전 파병이 결정된 상황이었으나 참전 사실을 부모님께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집을 떠난 불효가 한동안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 곡례편에 보면 부모를 대하는 예법이 나와 있다. 밖에 나갈 때는 목적지를 말씀 드리고(出必告), 집에 돌아와서는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야 한다(反必面)는 뜻이다. 이는 자식이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자주 소통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한만큼 부모에 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자녀들에게서 연락이 없어 서운해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과연 바빠서 그런 건지 무관심해지고 있는 건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이기에 이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해서 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말이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 세대는 노트북에다 인터넷, 휴대전화 등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이고 더구나 보지 않고도 문자를 보낼 수 있을 만큼 기기에 익숙해 있어서 친구끼리 하루 수십 통의 문자를 주고받으며 산다. 그러면서도 부모에게는 단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을 쓸 수 없다면 과연 그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근길 퇴근길에 전하는 안부 전화 한 통화가 부모님께는 하루의 활력이 될 수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전화로라도 ‘출필곡 반필면’ 할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전화해야 훗날 후회가 없을 것이다.

요즘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지역의 문화 관련 단체에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조선시대 양반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는 선비 교육을 하는 경우를 본다. 향교나 한옥마을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인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들은 조선시대 유생처럼 도포에 유건을 쓴 의젓한 모습으로 사자성어를 배우며 선비 체험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전통 생활 습관과 올바른 언행을 지도하는 것이 사람됨의 품성을 길러주는 방법의 하나다.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 아닌가 한다. 갈수록 가정교육의 부재, 대중매체의 역기능, 입시 위주의 과열 교육은 도덕 불감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자리에 들고 나는 일에 대한 아룀’은 아랫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윗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웠다. 유도나 검도와 같은 격투기 운동에서도 경기 규칙을 보면 예절로 시작해서 예절로 마무리한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예의와 염치, 도덕을 알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밖에 나갔다가 슬그머니 들어와 인사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어른들이 여간 상심해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인사를 받겠다는 뜻이 아니다. 자식이 밖에 나가서 행한 일이 바르지 못할 때 집에 들어와 부모님 뵙기를 피하기 마련이다. 얼굴에 생채기라도 나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왔을 때 앞마당으로 바로 들어서지 못하고 슬그머니 돌아서 제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내가 떳떳하지 못했을 때는 ‘출필곡 반필면’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야말로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이자 소통의 기회였지 않았나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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