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굿으로…잊혀진 이름을 부르다
국립남도국악원 창작 소리굿 ‘누산네 니단이’ 7월 4일 진도 진악당
소리·춤·음악으로 진도 굿 재해석…8장 장대한 서사 아픈 역사 위로
2025년 06월 25일(수) 21:00
진도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에서 오는 7월 4일·5일 국악연주단 정기공연 ‘누산네 니단이’를 펼친다. 단원들이 공연에 앞서 연습을 하는 모습. <국립남도국악원 제공>
모란이 피었다. 진도 어느 마을, 봄꽃이 흐드러진 날이면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린다. 그 가운데 이름 없이 스러진 이들의 넋이 스르르 진도의 바람에 실려 돌아온다.

소리로 부르고, 춤으로 달래며, 굿으로 위로하는 무대. 국립남도국악원이 창작 소리굿 ‘누산네 니단이’를 통해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낸다.

국립남도국악원(원장 박정경) 국악연주단이 창작 소리굿 ‘누산네 니단이’를 오는 7월 4일(오후 7시)과 5일(오후 3시) 오후 3시 진도 진악당 무대에 올린다. 매년 정기공연을 통해 지역성과 예술성을 결합한 창작국악을 선보여온 국악연주단은 이번에도 진도라는 공간의 시간성과, 이 땅의 기억을 동여맨 채 놓여 있는 슬픔의 기원을 무대 위로 불러올린다.

이번 정기공연은 2012년부터 이어진 국악연주단의 창작 활동 중에서도 가장 진도다운, 가장 한국적인 공연으로 꼽힌다. 진도의 굿 문화와 토속적 서사를 바탕으로 소리·춤·음악이 결합된 무대는 굿의 의례성과 서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공연은 단순한 창작극을 넘어, 진도라는 땅이 품은 기억을 씻김과 위무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누산네 니단이’는 진도 방언으로 ‘누구네 넷째딸’이라는 뜻이다. 한 소녀의 이름이었을 수도 있고, 아직 불리지 못한 어느 이름이었을 수도 있다. 공연은 이 잊힌 존재를 중심으로 혼을 부르는 굿을 바탕으로 짜여 있다. 죽음과 삶, 기억과 망각, 그리고 다시 부름을 통해 회복되는 서사를 담는다. 작품은 진도굿의 구조를 바탕으로 총 8장과 프롤로그·에필로그로 구성돼, 굿판의 시간과 서사가 응축된 장대한 구조로 펼쳐진다.

프롤로그 ‘모란 꽃’에서는 강강술래를 부르며 꽃처럼 피어난 소녀 니단이가 갑작스레 바다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장 ‘초혼’에선 당골이 절벽에서 혼을 부르고, 이어지는 2장 ‘얼마나 불길한 일이냐’에서는 멈춰버린 시간과 그것을 모독하는 이들에 대한 풍경이 전개된다. 3장 ‘이름도 없이 흐르는 물결따라’에서는 니단이의 혼이 나타나 스스로의 부재를 말하고 사라진다.

4장 ‘진도라니, 진도라니’에선 진도에 파견된 관료 위유사가 점차 사건의 의미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5장 ‘누산네 니단이’에서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상여를 부수려는 자들 앞에 누산네와 위유사, 당골이 맞서고, 마침내 니단이의 혼이 모습을 드러낸다. 6장 ‘천년의 나무들’에서는 자연의 시선으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는 백송과 동백이 등장해 생소(生疏)의 힘을 노래한다.

7장 ‘네 이름은, 내 이름은’에선 당골의 굿과 위유사의 사과 속에 잊힌 혼들이 되살아나고, 니단이는 스스로의 이름이 ‘사월’이라 밝힌다. 에필로그에서는 다시 강강술래의 노래가 시작되고, 니단이는 원 안에서 활짝 피어난다. 슬픔은 위로로, 상처는 봄의 꽃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극은 굿의 전통 구조를 따르면서도 문학적 서사와 음악극 형식을 결합했다. 상여가 가라앉고, 당골이 노래하고, 바람이 흔드는 천 아래에서 이름 없는 혼이 길을 찾는다. 굿판은 점차 넓어지고, 마침내 이름을 되찾은 넋이 봄의 기억과 함께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죽음의 장례가 아니라, 이름을 통해 존재를 복원하는 시간의 의례다.

연출은 국립국악원 대표공연 ‘종묘제례악’을 맡았던 남동훈이, 작곡은 유민희, 대본은 천정완, 무대디자인과 조명은 오태훈·이경은이 맡았다. 국악연주단의 연주와 함께 소리꾼, 배우, 무용수들이 굿과 극, 음악이 맞물린 복합 예술로 무대를 채운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며, 진도읍사무소 및 고군면 장등문화센터(오일시장)와 국악원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예매는 국립남도국악원 홈페이지 또는 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봄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모란처럼, 한때 잊혔던 이름이 다시 불린다. 그것은 진도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가 간직한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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