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의 문학적 치유- 김진구 광주시교육청 시민협치진흥원장
2025년 06월 18일(수) 00:00
전남 장흥은 여러 문인을 배출한 문향(文鄕)이다. 한 지역에서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많은 문인들이 태어난 것은 드물다.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효시라고 평가받는 ‘관서별곡’의 백광홍이 우뚝하다. 현대문학에 이르러선 더욱 두드러진다. 절절한 애환이 휘감는 ‘서편제’의 이청준, 동학농민혁명의 비극적 상황을 민중의 저항으로 펼쳐낸 ‘녹두장군’의 송기숙이 있다. 그리고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부녀 작가로 널리 알려진 한승원이 있다. 소설가 한승원은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한 직후 많은 인터뷰 기사가 나왔지만 그 이전부터 우리에게 영화로도 친숙한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 여러 작품을 썼다.

학부모-자녀 협치학교에서 장흥을 찾아갔다. 학부모 문학기행이다. 한승원 작품의 산실인 해산토굴과 ‘달 긷는 집’에서 노벨문학상의 근원을 긷고, ‘이청준 문학자리’와 천관문학관을 탐방한 문학 여정이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진행된다. 주중에는 학부모 중심으로, 주말에는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동행한다. 지난해에는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일정으로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는 소화다리와 현부자집의 벌교를 수차례 갔었다.

오는 20일에는 광주교육시민독서회의 문학기행도 시작한다. ‘문학과 역사가 만나는 곳, 광주의 기억을 걷다’가 주제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가 걸었던 길 2.1㎞를 걷는다. 소설의 실제 배경지 도보걷기는 당시의 거리와 공간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민주묘지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역사적 성찰과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그날의 아픔을 되새긴다. 광주 학부모, 시민으로 구성된 11개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참가한다.

우리 지역 작가들은 동학농민혁명, 5·18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 근현대사의 처절한 비극과 인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한승원과 한강 부녀 작가는 동학과 5·18과 4·3을 아우르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한강)는 제목처럼 4·3사건의 비극이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이기에 치유와 화해가 더 필요하다는 시적 산문체의 작품이다. 동학농민혁명을 해안 지역 어민의 시각으로 확산시킨 ‘동학제’(한승원)와 탐관오리의 횡포와 외세의 개입을 단순한 고난과 봉기가 아니라 피지배 계층의 사회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녹두장군’(송기숙)은 동학농민혁명의 문학적 횃불이다.

이처럼 호남과 제주도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세기를 걸쳐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탐관오리, 군부 독재, 이념 갈등의 국가폭력에 대해 농민이 봉기했고 시민이 맞섰으며 도민이 억압에 저항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폭도와 연좌제로 묶였다. 왜곡과 평가절하 속에서 제대로 된 명칭을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농민, 시민, 지역민이 권력 집단에 맞서서 인권, 민주, 평화를 지켜낸 것으로 재평가되었다. 이번 유적지와 소설의 배경지, 작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지역 간에 더 많은 연계사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우리 교육자들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된 사업으로 광주 5·18민주화운동 및 제주 4·3 민주, 인권, 평화교육을 위해 광주시동부교육지원청과 제주시교육지원청이 업무협약을 맺고 ‘빛탐인(빛고을-탐라)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전남·전북·제주도교육청의 연수원이 실시하는 ‘호남·제주권 역사교육 공동 직무연수’가 있다. 교원을 대상으로 한 이 연수는 오월 광주, 전남 義, 전북 동학농민운동, 제주 4·3을 주제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수업 사례와 현장 유적지 답사로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광주, 전남, 전북, 제주도교육청 차원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규모나 횟수, 교류 대상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학농민혁명과 5·18민주화운동과 4·3사건의 정신을 기리고 승계하기 위해 학생, 교직원뿐만 아니라 학부모회, 학부모독서회까지 유적지 탐방, 소설 속의 현장 방문 등 여러 사업들이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이름하여 ‘동오사(동학, 5·18, 4·3) 역사교류 프로젝트’라 가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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