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품 원료 ‘명반석’ 침탈의 현장…깎인 산·저장 창고·병원 터 그대로
해남군 옥매산 일대
![]() 해남군 문내면 신흥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옥매산 모습. 당시 노천채굴로 산이 그대로 깎여 있는 채로 남아있다. |
일제강점기 해남군 옥매산 일대는 군수품의 원료로 사용되던 명반석을 캐기 위한 침탈의 현장이었다.
해남군 옥매산 일대에 자리한 옥매광산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 규모의 강제동원 현장 중 하나임을 방증하듯 대규모로 세운 명반석 저장 창고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서 옥매산을 바라보면 노천 채굴로 산이 통째로 깎여 나간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에서 채굴된 광물은 자동삭도를 통해 1.34km 떨어진 적재시설로 옮겨졌고, 수압궤도를 거쳐 바닷가 선착장까지 이송됐다.
옥매산에는 2곳의 대형 광물창고가 남아 있는데 이 중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 옥동마을 선착장 인근에는 명반석을 일본으로 실어 보내기 위해 쓰였던 콘크리트 구조의 광물 창고가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일본의 아사다(淺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산에서 퍼 나른 명반석을 임시 저장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해당 창고는 높이 10m, 폭 30m에 달하며, 옥매산 광산에서 케이블카 시설물을 통해 싣고 온 명반석을 보관하던 바닷가 창고로 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저장소는 설비 완공 직전에 해방이 되면서 실제로는 거의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장고에는 6·25 전쟁 당시 미군폭격기의 폭격을 받아 건물외벽 군데군데에 포탄자국이 나 있다.
옥매산 중턱에는 성냥갑 모양의 2차 저장소가 있으나,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만큼 숲이 우거져 항공사진으로만 실체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저장고 천장에는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는데, 케이블카로 옮겨 온 명반석을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쏟아내 광석 운반 레일에 싣는 식으로 명반석을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매광산 아래에는 다이너마이트(화약) 저장창고도 설치돼 있다. 창고로 가는 길에는 두 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 있는데, 기둥에는 화약 창고로 가는 길임을 알리는 명패를 걸어놓았던 쇠고리도 그대로 있다.
화약창고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폭압을 차단하기 위한 방호 둔덕이 흙담처럼 둘러져 있으며, 벽돌로 지어진 다이너마이트 뇌관 보관창고 또한 그대로다. 내부에는 일명 ‘떡밥’이라 불린 고체화약을 보관하던 창고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옥매산 아래 신흥마을에는 과거 도자기 공장, 병원 터가 남아있다. 광산관리사무소 터에는 현재 다른 건물이 들어섰고, 일본인 직원들이 거주했던 집은 다 무너진 상태다.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중 118명이 바다에 수몰됐던 광부들이 출항한 항도 현존한다.
항구 인근에는 해남군민들이 후원금을 모아 세운 ‘해몰사건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에는 광부 118명이 집단 수몰된 사건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귀환자와 사망자 등의 이름이 적혀있으며 비 측면에는 후원자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해남군 옥매산 일대에 자리한 옥매광산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 규모의 강제동원 현장 중 하나임을 방증하듯 대규모로 세운 명반석 저장 창고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서 옥매산을 바라보면 노천 채굴로 산이 통째로 깎여 나간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에서 채굴된 광물은 자동삭도를 통해 1.34km 떨어진 적재시설로 옮겨졌고, 수압궤도를 거쳐 바닷가 선착장까지 이송됐다.
해당 창고는 높이 10m, 폭 30m에 달하며, 옥매산 광산에서 케이블카 시설물을 통해 싣고 온 명반석을 보관하던 바닷가 창고로 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 선착장 앞 지난 2018년 해남군민들이 후원금을 모아 세운 해몰사건 추모비가 놓여있다. |
저장고에는 6·25 전쟁 당시 미군폭격기의 폭격을 받아 건물외벽 군데군데에 포탄자국이 나 있다.
옥매산 중턱에는 성냥갑 모양의 2차 저장소가 있으나,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만큼 숲이 우거져 항공사진으로만 실체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저장고 천장에는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는데, 케이블카로 옮겨 온 명반석을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쏟아내 광석 운반 레일에 싣는 식으로 명반석을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매광산 아래에는 다이너마이트(화약) 저장창고도 설치돼 있다. 창고로 가는 길에는 두 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 있는데, 기둥에는 화약 창고로 가는 길임을 알리는 명패를 걸어놓았던 쇠고리도 그대로 있다.
화약창고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폭압을 차단하기 위한 방호 둔덕이 흙담처럼 둘러져 있으며, 벽돌로 지어진 다이너마이트 뇌관 보관창고 또한 그대로다. 내부에는 일명 ‘떡밥’이라 불린 고체화약을 보관하던 창고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옥매산 아래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되던 화약창고가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중 118명이 바다에 수몰됐던 광부들이 출항한 항도 현존한다.
항구 인근에는 해남군민들이 후원금을 모아 세운 ‘해몰사건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에는 광부 118명이 집단 수몰된 사건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귀환자와 사망자 등의 이름이 적혀있으며 비 측면에는 후원자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