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보다 중요한 건, 다시 오는 정치인
선거철 북적이는 전통시장, 후보는 떠나고 일상은 남는다
말뿐인 민생 행보보다 필요한 건 상인 곁의 ‘반복 방문’
2025년 06월 03일(화) 09:30
광주 북구 동문대로에 위치한 말바우시장 동문의 모습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의 발길은 어김없이 전통시장으로 향한다. 지지율을 끌어올릴 ‘정통 코스’처럼 시장 골목을 돌며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은 대부분 하루짜리 이벤트에 그친다. 후보가 떠난 자리엔 다시 고된 일상이 남는다. 광주의 전통시장, 그중 말바우시장에서 정치인의 발걸음이 지나간 뒤에도 이어지는 일상과 상인들의 민심을 들여다봤다.

말바우시장 동문으로 들어서면 높은 아케이드 지붕 아래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대파를 가득 실은 트럭 앞, 상인 두 명이 바삐 오가며 채소를 내린다. 장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시장은 하루하루가 생계의 최전선이다. 그래서 선거철은 오히려 불편하다.

이곳에서 26년째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64)는 “저번 총선 때 북구 지역위원장을 한 번 봤다”며 “오면 자기들끼리 악수하고, 뒤에 사진 찍는 사람들만 따라다닌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우리 소비자인데, 신기해서 그쪽으로 몰리면 우리는 장사가 안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30년째 이불 장사를 해온 김근택(70)씨는 최근 말바우시장에서 열린 한 정치인의 방문 행사 당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악수를 청하며 ‘고생하신다’는 인사는 들었지만 정작 장사에 대한 진심 어린 대화는 없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밥거리만 50여 분 돌고 가더라”고 덧붙였다.

말바우시장 뒷골목, 좌판 위에 직접 기른 채소를 진열해 놓고 장사 중인 상인.
보여주기식 방문보다 상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실질적인 변화다. 시장 인프라·정책·제도 등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많다. 시장에 설치된 아케이드 지붕은 지난해 완공됐다. 외형상 전통 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환처럼 보이지만 이는 상인들의 오랜 요구 끝에 얻어낸 결과다. 무더위와 우천 속에서도 좌판을 펴고 장사를 이어가야 했던 상인들은 2~3년에 걸쳐 민원을 제기하고 집단 항의를 통해 지붕 설치를 이끌어냈다.

30년 넘게 좌판에서 비누를 팔아온 김종근(79)씨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비오면 다 맞고 바람 불면 물건이 날아갔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지붕 하자 생겨도 고쳐주지 않는다. 설치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카드 사용 이후 세금 부담이 늘어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광주상생카드가 매출 감소와 세금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예전에는 현금 거래가 대부분이라 정확한 매출이 드러나지 않아 장사를 지속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카드 결제로 매출이 모두 기록되면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었다. 장사가 잘돼도 실제 손에 남는 돈은 줄었다”고 말했다.

말바우시장 앞 사거리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선거 팸플릿 모습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시장을 찾아도 “장사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질문을 하는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20년 넘게 모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제 상황을 더 민감하게 느낀다”며 현실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정치인의 진심에 대해 “이곳을 찾은 정치인 중 진심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며 “겉으로만 호응하는 척할 뿐, 실제로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시장을 찾는 모습은 익숙하지만 그 방문이 남기는 것은 대부분 피상적인 이미지뿐이다. 실제 시장을 지키는 노년 상인들은 무더위 속 선풍기 하나 없이 땡볕과 싸우고, 바람에 흩날린 깻잎순을 줍느라 분주하다. 이들의 초 단위로 돌아가는 일상이 전통시장의 진정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의 발걸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글·사진=정경선 인턴기자 redvelvet2761@naver.com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8910600784872339
프린트 시간 : 2025년 06월 06일 16:2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