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앞 軍 집단발포 직전 … 긴박했던 금남로의 5월
1980년 5월 21일 오전 시민 눈으로 본 ‘5·18 영상’ 첫 공개
5·18기록관, 광주시민 문제성씨 촬영 5분 40초 영상 복원
오전 9시 30분~12시 타임라인 구축에 도움 …소중한 기록
5·18기록관, 광주시민 문제성씨 촬영 5분 40초 영상 복원
오전 9시 30분~12시 타임라인 구축에 도움 …소중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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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동구 금남로 가톨릭센터(현 5·18기록관) 앞에서 구용상 광주시장이 시민들에게 자제와 질서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다 “집어치워라”는 야유를 받고 쫒겨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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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전날 밤 광주역에서 발견된 희생자 2명의 시신을 리어카에 옮겨 싣고 태극기로 덮은 다음 금남로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행진했다.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가져온 군용트럭 등도 시위에 동원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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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에 시위대가 5만여명으로 불어나 6차선 도로가 인파로 가득찼다. 캘리버50 기관총에 실탄을 장착한 계엄군의 장갑차(M113)가 시민군 앞에 배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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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과 불과 50m 거리를 두고 대치한 시민군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후 1시가 되자 도청 옥상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공수부대는 일제히 집단발포를 시작했다.
사진= 최현배·김진수 기자 choi@kwangju.co.kr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하기 직전, 옛 전남도청 앞 긴박한 순간을 시민의 시각에서 본 영상이 최초로 공개됐다.
계엄군의 5월21일 금남로 발포 직전까지 긴박한 현장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사진과 증언으로만 전해졌던 당시 상황을 실시간 추적할 수 있는 역사 자료로 평가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7일 시사회를 열고 광주 시민 문제성(70)씨가 1980년 5월 21일 당시 촬영한 광주시 금남로 일대의 영상을 공개했다.
앞서 5·18기록관은 지난달 문씨로부터 필름을 기증받아 한국영상자료원에 복원을 의뢰하고, 정식 복원에 앞서 저화질로 간이 복원된 영상을 전달받았다.
영상은 5월 21일 오전 9시 30분께부터 12시께까지 광주 금남로 일대를 촬영한 5분 40여초 분량의 8㎜ 필름 영상이다. 광주시민들의 시위 행렬 중간쯤에 있던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아치형 구조물(19회 전남체전·61회 전국체전 선수단 응원 구조물) 위에서 촬영됐다.
시민들이 아세아자동차에서 차륜형 장갑차를 끌고 와 시위 대열에 합류하자, 이를 막으려는 계엄군이 최루탄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최루 가스 사이로 시민군 장갑차가 후진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 때 시민군 장갑차는 돌진 후 광주관광호텔 앞에 선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 10시 20분께 두 대의 계엄군 캐터필러형 장갑차가 광주관광호텔 앞으로 전진 배치되고, 그 앞 50여m 간격을 두고 시민들이 대치하는 긴박한 순간도 영상에 잡혔다.
이 당시 배치된 장갑차(M113) 두 대 중 한 대에는 12.7㎜ 기관총에 실탄이 장착돼 있었다는 사실이 광주일보 자료사진을 통해 확인<광주일보 2022년 6월 23일 1면>된 바 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분석을 거쳐 해당 사진이 촬영된 시각을 오전 10시 40분 전후로 추정한 것과도 일치한다. 영상에는 오전 11시30분께 시민 8명<>
이 계엄군과 최루 가스를 피해 시신 2구가 실린 리어카를 둘러싸고 끌고 가는 장면, 전남도청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UH-1H)와 군용 수송기 모습도 담겼다. 낮 12시 전후로 문씨의 영상은 끝났으며, 문씨가 귀가한 이후 오후 1시께 이곳에서는 계엄군의 시민을 향한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
문씨가 남는 필름을 소진하고자 추가로 찍은 영상에는 계엄군이 일시 후퇴한 5월 23일(추정) 광주 충장로의 모습이 담겼다. 가게 곳곳에 조기(弔旗)가 걸려 있으면서도 ‘계엄군을 물리쳤다’는 기쁨에 시민들이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다.
영상을 분석한 이재의 박사(5·18기념재단 연구위원)와 차영귀 서강대 서강국제한국학선도센터 연구위원은 “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에 시민들 시각에서 찍은 영상이라는 점, 시간 순서가 왜곡 없이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기존 영상들은 대부분 계엄군 측에 서서 시민을 찍거나, 계엄군이 직접 촬영한 것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방송국 등에서 사용한 영상들은 보안사가 대부분 입수를 해서 편의에 따라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재조립·재배열됐던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 박사는 “향후 이 영상이 5월 21일 오전 상황을 재구성하는 기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간 5·18 경험자들이 45년 전 경험을 더듬어 진술하다 보니 정확한 시간대를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 영상이 객관적인 타임라인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상을 기증한 문씨는 당시 외국계 사무기기업체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업무 포상으로 받은 카메라로 영상을 찍었다. 5월 19~20일 계엄군 만행을 본 그는 부처님 오신날인 21일 휴일에 영상을 촬영했다고 한다.
문씨는 이후 ‘중요한 장면이 없어 보인다’며 45년간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최근 부친이 별세하고 유품을 정리하다 필름을 발견,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필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중요한 장면들을 더 많이 찍었을텐데 아쉬움이 있다”며 “영상이 진상 규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말했다.
한편 5·18기록관은 기증받은 영상을 고해상도 복원 작업 등을 거쳐 공개할 방침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