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산·바다 품은 순백의 건축…공간 너머 ‘사유’를 짓다
[강릉 씨마크호텔·시립미술관]
■ 씨마크 호텔
미국 대표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설계
바다·호수·일출·태백산 자태 한눈에
수평선과 어우러져 자연에 스며든 듯
동해안 대표 현대 건축 ‘아이콘’ 부상
■ 시 립미술관 ‘솔올’
2025년 05월 26일(월) 20:05
하늘에서 바라본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주변의 숲과 잘 어우러져 있다. <ⓒ Roland Halbe>
한반도 동쪽, 동해의 푸른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곳.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시 중 하나인 강릉은 그 자연의 위용만큼이나 인상적인 건축을 품고 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강릉의 대표적인 두 건축물을 소개한다. 바로, 웅장한 수평선과 하나 돼 존재하는 ‘씨마크호텔’과 예술의 숨결을 머금은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이다.

이 두 건축물은 모두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차드 마이어가 건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혹자는 말한다.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을 2개나 품은 강릉은 복 받은 도시라고.

◇빛과 순백의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리차드 마이어(91)는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로, 미니멀한 디자인과 순백의 건축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계열의 건축가로, 간결한 형태와 정제된 공간 구성, 그리고 ‘빛’의 활용을 핵심 요소로 삼는다.

1984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반열에 올랐고, 로마의 ‘ARA 파키스 박물관’, 로스앤젤레스의 ‘게티센터(Getty Center)’, 프랑크푸르트 수공예 박물관 등이 대표작이다.

마이어의 건축은 주로 하얀색 외관과 기하학적 구성이 특징이며, 자연광을 극대화해 건물 내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설계는 시각적 단순함 속에서 깊은 공간감을 유도하며, 사용자에게 명료하면서도 사유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씨마크호텔과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의 설계를 통해 동양적 풍경과 마이어의 서양적 미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이 두 건물은 자연과 빛, 그리고 인간의 동선을 섬세하게 고려한 공간 구성으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 건축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바다를 품은 건축, 씨마크호텔(SEAMARQ Hotel)=씨마크호텔은 경포대 인근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대표 럭스티지(LUXTIGE) 호텔이다. 과거 ‘호텔현대 경포대’였던 이 부지는 2015년 리차드 마이어에 의해 전면 재건축되면서 동해안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리차드 마이어의 국내 첫 설계작인 만큼 하얀색 외관부터 특유의 ‘화이트 아키텍처’ 철학이 드러난다. 순백의 파사드는 태양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며, 바다의 푸른빛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자연과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직선과 곡선, 유리와 콘크리트의 절묘한 배치는 바다의 수평선과 시각적 연결감을 주며, 마치 건축이 자연 속으로 스며든 듯한 느낌을 준다.

씨마크호텔의 내부 공간은 외부의 바다 풍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객실마다 탁 트인 창이 설치돼 있어 아침에는 동해의 뜨거운 일출과 함께 할 수 있고, 밤에는 달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로비부터 스파, 수영장까지 모든 공간이 ‘경관’ 중심으로 설계됐다. 특히, 인피니티 풀은 바다와 맞닿은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며, 사용자에게 일종의 ‘건축적 감흥’을 선사한다.

객실 내부는 간결한 디자인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한 구조로, 고급스럽되 과하지 않은 균형감이 돋보인다. 이는 마이어의 설계 철학인 ‘순수한 형태와 기능의 조화’를 충실히 구현한 결과이다. 이같은 결과물은 201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았고, 현재도 많은 건축학도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여담으로 씨마크호텔이 재건축된 2015년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북한 지역인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가 고향인 정 명예회장은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향수를 달래고자 경포대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매년 이곳에서 여름 신입사원 수련대회를 열어 젊은 직원들과 씨름, 배구 등을 즐겼다. 정 명예회장의 애정을 듬뿍 받은 호텔답게 경포대 최고의 경치와 환경을 누릴 수 있다. 푸른 바다와 호수, 장엄한 일출과 태백산맥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와 단연 동해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강릉 시립미술관 솔올. 빛과 투명성, 자연광을 엄격하게 준수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숲과 예술의 쉼터,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씨마크호텔이 바다를 품었다면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은 숲과 시간을 품은 건축이다. 2022년 개관한 솔올은 강릉의 문화·예술 자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술관으로, 올 4월 강릉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솔(소나무)’과 ‘올(강릉 방언으로 마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솔올 역시 리차드 마이어의 건축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형태와 재료, 구성의 단순함,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독특한 미학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 자연, 미술, 건축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며,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자연 속에서 예술을 체험하고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 된다.

강릉 씨마크호텔 본관과 별관이 모두 보이는 전경.
건축물에는 빛과 투명성, 자연광을 엄격하게 준수한 디자인 철학이 추구됐고, 이는 미술관 형태와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방문객들의 동선을 따라 펼쳐지는 공간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실내조명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예술작품의 전략적 배치가 빛과 어우러져 입체적인 감상을 제공한다.

또한, 솔올은 강릉시 교동 7공원 내에 위치해 있어 소나무, 참나무, 벚꽃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는 평온한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다양한 야외 공간과 정원,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강릉의 자연환경과 현대적 미학이 어우러진 상징적인 공간으로 강릉의 랜드마크 건축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 6월29일까지 개관 기념 특별전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뉴욕시대’가 진행되니 강릉을 찾는다면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강릉 씨마크호텔 로비는 통창으로 구성돼 자연과 맞닿은 경험을 선사한다. <씨마크호텔 제공>
◇강릉, 건축과 감성이 만나는 여정=씨마크호텔과 솔올은 그 외관과 기능에서 분명히 다른 건축물이지만 공통적으로 ‘장소성’을 깊이 있게 반영한다. 바다와 가까운 호텔은 자연과의 조화를, 문화와 예술의 중심인 미술관은 지역성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이 두 건축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각각의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경험’ 그 자체다. 한 곳은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을, 또 한 곳은 예술과 사유의 여운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언어로 풀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또한, 이 두 곳 모두 로비가 특별하다. 두 곳의 로비에 집중해 방문한다면 특별한 경험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동해를 품은 강릉. 그곳에서 건축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자연과 예술, 삶과 철학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쉼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영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강릉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감성의 언어로 우리를 초대하는 곳이라고. 바다의 수평선 끝, 숲의 고요함 속의 건축을 만나기 위해 지금 강릉으로 떠나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강원일보=권순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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