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리비히의 물통과 한국 사회
2025년 05월 21일(수) 21:30
사람들은 오해한다. 과학자들은 어릴 때부터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아는 과학자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어린 시절에 과학과 수학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과학과 수학은 외우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삼삼은 구, 팔구 칠십이. 구구단은 암기하면 됐다. 지구는 태양 주변을 타원 궤도로 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도는지, 왜 굳이 타원이어야 하는지 따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어리고 젊었을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은 문학이 중심인 국어인 경우가 많다. 사람을 이해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과학 역시 사람 이야기를 하는 과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생물 시간에 ‘최소율의 법칙’을 배우면서 과학이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최소율의 법칙은 근대 농업 과학의 기초를 세운 19세기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만들었다. 식물이 성장하려면 질소, 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황, 철 같은 다양한 무기 영양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영양소가 부족하면 나머지 모든 영양소가 아무리 풍부해도 식물은 그 가장 부족한 영양소의 수준까지만 성장한다. 이게 바로 최소율의 법칙이다.

리비히는 이것을 세로로 긴 여러 개의 나무 판자를 둥글게 이어 붙여 만든 물통에 비유했다. 그런데 이 판자들은 높이가 제각각이다. 어떤 판자는 길고, 어떤 판자는 짧다. 이 물통에 물을 담으면 어떻게 될까? 물은 가장 짧은 판자 높이까지만 담긴다. 다른 판자들이 아무리 높아도 그 짧은 판자 하나 때문에 물을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물통의 판자들이 각각의 영양소라면 어떻게 될까? 식물은 가장 짧은 판자의 높이까지만 성장한다. 나머지 판자가 아무리 높아도 소용없다.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를 제한하는 것. 이것이 최소율의 법칙의 핵심이다.

나는 이걸 처음 배울 때 ‘참 공평하고도 야박한 법칙이구나’ 싶었다. 이 법칙은 “잘난 척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잘난 부분이 많아도, 못난 곳 하나가 너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성장이란 게 평균이 아니라 최소값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자연은 우리에게 가르쳐준 셈이다.

한국 사회를 보면 리비히의 물통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의 물통은 언뜻 보기엔 제법 그럴싸하다. 몇몇 판자들은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아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 BTS의 빌보드 1위,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신드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한 통신망,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치안 수준. 참 잘 만든 판자들이다. 어느 판자는 광이 나고 어느 판자는 “우리 물통이 넘칠 지경이야”라고 자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물은 넘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리비히가 살아있다면 리비히의 물통을 가리킬 것이다. “가장 짧은 판자를 보시지요.” 한국 사회의 짧은 판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기 때문일까.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이들이 정차 시위를 하면 ‘출근 방해’라고 욕하는 사람이 아직도 가끔 있다. 문화예술 공간 하나 없어 아이들이 노래 한 곡 배울 기회도 없이 자라는 섬마을이 있다. 정규직보다 두 배는 더 오래 일하고도 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사는 노인이 집에서 숨진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곤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최소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우리 전체의 삶의 수위를 결정한다. 더 높이 가고 싶다면 짧은 판자를 먼저 보수해야 한다. 내 물통이라면 혼자 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의 물통이라면 함께 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 기회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외침에 동감은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선물처럼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가장 낮은 판자다. 울퉁불퉁한 물통이 아니라 가지런한 물통을 만들어야 한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가장 낮은 판자부터 끌어올릴 때 비로소 물통은 가득 찰 수 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높고 자랑스러운 판자들에 더 이상 도취되지 말자. 자연은 늘 균형을 이야기한다. 리비히의 물통은 자연의 이야기를 건네 주었다.

“한국 사회는 가장 잘난 것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가장 부족한 것으로 결정된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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