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도 없는 무개념 기념식…광주에 상처만 남겼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기념식 뒤 희생자 묘지 외면하고 유족도 안 만나
묘지에 저격용 총기 배치·무장 경호원들 활보…유족 ‘트라우마’ 호소
2025년 05월 18일(일) 19:55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정부가 주최한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오히려 5·18 유족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사로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무장 경호원이 기념식장에 등장하고, 정부 대표로 온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묘지 참배조차 생략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는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엄수했다.

이번 행사에는 1997년 5·18 기념식이 정부 주최로 전환된 이후 최초로 현직 대통령·국무총리가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5·18 유족들은 이날 기념식 이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권한대행은 이날 기념식이 끝나자, 묘지도 아닌 유영봉안소를 잠시 둘러본 뒤 빠르게 퇴장했다. 역대 기념식에서 정부 대표는 기념식을 마치는대로 5·18민주묘지 일대를 둘러보며 참배를 해 온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정부 대표가 5·18 유족인 오월 어머니들을 만나 격려하는 등 모습 또한 올해는 사라졌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이 권한대행 등 일부 인원이 대표로 헌화·분향했을 뿐, 각계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이 돌아가며 헌화·분향하는 과정도 생략했다.

기념식장 내 곳곳에서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이 군복과 방탄 조끼, 방탄 헬멧 등을 챙겨 입고 총기로 무장한 채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 5·18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도 했다.

군복을 입은 경호원들은 기념식장 전면의 시민군 조각상인 ‘무장항쟁군상’ 인근, 유족 쉼터 발코니 등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기념식장 묘역 뒤쪽 양 끝에 배치된 저격수들은 묘지 내부 방향으로 각각 저격총 1정씩 총 2정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이들은 경호원이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양복 등을 입고 모습을 숨기는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군복을 입고 있었다. 더구나 5·18 기념식은 군인을 동원한 국가폭력으로 산화한 5·18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라는 점에서 부적절한 복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잉 경호’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 제44주년 기념식에서도 경호원은 모두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저격수는 인근 산지나 기념식장 구조물 뒤편 등으로 숨어 있었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5·18 유족들은 아무리 대통령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 참석한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보여주기식 행사만 치렀을 뿐 유족들과 공감하고 아픔을 달래주려는 최소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한 언급도 없고, 유족들과 공감 한 마디 나누지도 않고 서둘러 행사장을 떠나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며 “더구나 보란 듯이 군복을 입은 이들이 기념식장을 돌아다니고 있어 5·18 유족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또한 “기념식장에서 12·3 비상계엄 때 국회로 쳐들어간 군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며 “보훈부는 5·18이 왜 발생했는지,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행사를 꾸려 5·18 유족과 부상자들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기념식 날이 대통령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이고,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선 후보들까지 한 데 모여 있어 유사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경호 차원에서 무장 경호원이 투입된 것”이라며 “보훈부가 주최하는 행사라 하더라도 경호 인력은 경호 수칙에 따라 배치되므로 별도로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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