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잃을 위기 노동자·대피소 찾은 주민 “이게 무슨 난리냐”
인근 주민들 화재·연기 피해 대피소로…역한 냄새에 창문도 못열어
수개월 이상 공장 중단 예상 3000여 노동자들 고용·임금 문제 걱정
2025년 05월 18일(일) 19:50
18일 광주시 광산구 광주여대 체육관에 금호타이어 공장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나명주 기자mjna@kwangju.co.kr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이틀째 이어지며 광주시민들은 숨막히는 주말을 보내야 했다. 큰 불은 잡혔지만 화재가 이틀째 이어지면서 대피한 주민들 뿐 아니라 연기와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 등으로 상당수 주민들은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노동자들도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 아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밤새 한숨도 못잤다” 고통 호소=금호타이어 화재로 광주시 광산구 광주여대 체육관에 마련된 주민 대피소를 찾은 주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피소 생활에 막막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광산구는 화재 발생일인 17일부터 체육관에 구호 텐트를 설치키로 하고 지역민 600여세대에게 대피 문자를 보냈다. 18일 오후 1시 기준 텐트 129개가 설치됐고 69개가 채워졌다.

아들이 금호타이어 직원으로 있다는 김영만(81·광주시 광산구 소촌동)씨 부부는 전날 마을회관에서 밤을 지내고 ‘대피소로 가자’는 이웃들 제안을 받고 가방 하나만 들고 이날 광주여대 체육관을 찾았다. 김씨는 “고무 타는 냄새가 독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헬기 소리와 물 뿌리는 소리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공장 걱정도 했다. 김씨는 “공장이 문을 닫으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다. 김씨 배우자도 “불이 크게 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텐트 안에 누워 있는 것도 어색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피소에 마련된 보건소 의료지원 부스에는 연기 흡입으로 두통, 메스꺼움, 목마름 등을 호소하는 지역민의 방문이 이어졌다. 광산구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50명이 의료 상담을 받았고 27명의 주민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심리지원 상담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금효(76)씨도 “혼자 여기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집에 있는 것보다는 덜 불안하다. 그래도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고 눈물을 훔쳤다.

◇“방 안에 갇혀 창문도 못 열어”=대피하지 않은 주민들의 불안감도 비슷했다. 이날 소촌동 인근 지역 주민들은 전날부터 극심한 연기와 냄새로 인해 창문조차 열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주민은 집 안에 갇힌 채 밤을 지새우며 공포에 떨기도 했다.

소촌동에 거주하는 최량(76)씨는 “지난해 허리 수술 후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데 움직일 수가 없으니 너무 불안했다. 연기는 들어오고, 냄새는 나는데 방 안에 그대로 갇혀 있었다”며 “밖에서 ‘쾅’ 하는 소리도 서너번 들렸다. 그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신촌동에 거주하는 박종화(63)씨도 “바람을 타고 연기가 넘어오면서 아파트 앞이 새까맸다”면서 “마스크를 써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창문 닫아봤자 소용이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공장 정문 바로 맞은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영례(61)씨는 이틀 내내 청소를 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까만 타르가 남아있다며 벽을 닦아 보였다. 김씨는 “20년간 이런 화재는 처음”이라며 “예약했던 손님들에게 다 전화 걸어서 오지 말라고 하고 하루 종일 바닥과 소파를 닦았다. 근데 아직도 검은 먼지가 계속 묻어난다”고 토로했다.

◇금타 광주공장 노동자, 직장 잃을 위기=광주공장 노동자들도 당장 일터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금호타이어에 따르면 광주공장에는 노동조합원만 1600여명에 달한다. 정비·식당·청소 등 직접 생산라인이 아닌 이른바 ‘총무성’ 노동자(비정규직)는 100여명으로 알려졌다. 연구직, 사무직 등을 포함하면 총 3000여명 가까운 직원이 있다.

화재 현장 복구를 위해 최소 수개월 이상 공장 가동이 어렵다는 점에서 고용과 임금 문제 등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광주공장 직원들은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공장이 없으니 임금도 없을 것이라는 말부터, 노동자들의 실수가 아닌 만큼 임금 70%를 보전해 준다는 말이 나오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한 생산직 직원은 “특히나 지출이 많은 5월 가정의 달인데, 당장 이번 달부터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며 “아들 학자금 대출에다 아파트 대출, 생활비까지 매달 나가는 돈도 많은데, 공장 가동 중단이 장기화돼 회사가 문이라도 닫는다면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직원은 “공장이 멈춰서면 최소한의 급여만 지급될 가능성이 커 앞으로의 생계유지 등이 고민스럽다”면서 “일부 직원은 벌써부터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고 답답해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공장 복구 시기, 정상 가동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 직원 대책을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며 “다만 노동자 생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빠르게 노사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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