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후쿠오카 일본 마이니치 서울지국장이 본 5·18과 12·3 사태
“시민·언론은 역사 감시자 … 한국 민주주의 희망 봤다”
광주 도심 곳곳 탄흔·당시 발행 신문 등 보존…5·18 아픔 진행형
12·3 사태, 44년전 악몽 재현…한강 작가 말처럼 죽은자가 산자 구해
“시민·언론사 눈 감으면 계엄군이 미래 억압” 광주일보 호외 인상적
광주 도심 곳곳 탄흔·당시 발행 신문 등 보존…5·18 아픔 진행형
12·3 사태, 44년전 악몽 재현…한강 작가 말처럼 죽은자가 산자 구해
“시민·언론사 눈 감으면 계엄군이 미래 억압” 광주일보 호외 인상적
![]() 후쿠오카 시즈야
마이니치 신문 서울지국장 |
광주의 중심가에는 곳곳에 싸움의 상흔이 남는다. 10층짜리 전일빌딩 245 꼭대기 벽면과 바닥에 새겨진 무수한 탄흔은 전두환 정권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980년 5월, 계엄군이 광주시민에게 발포했을 때의 것이다. 시민 측 일부도 무기를 드는 대규모 항쟁의 결과 160명 이상의 시민이 살해됐다. 이 ‘광주민주화운동’은 일본에서 ‘광주사건’으로 불린다.
전일빌딩 245 인근에 세워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는 당시 신문이 전시돼 있다. 광주일보의 전신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자 조간 1면. 시인 김준태의 작품 ‘오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제목의 뒷부분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전남일보는 계엄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기자들은 당시 사장에게 이런 내용의 사표를 냈다. ‘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많은 광주시민의 뇌리에 되살아난 것이 지난 44년 전의 악몽이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에는 이런 명령이 열거됐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모든 보도와 출판은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 명령을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따라 처벌한다’. 그리고 윤 정권은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 심리는 장기화됐다. 나는 한국의 많은 언론사가 기각이나 각하 가능성을 전한 것에 경악했다. 만일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판례가 되며, 한국의 대통령은 앞으로 윤 대통령과 같은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반세기 전 군사정권 시대로의 회귀이며, 한국인이 1987년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 체제가 끝날 수도 있다.
나는 광주일보가 계엄령을 알린 호외의 다음 한 문장이 떠올랐다. ‘시민과 언론사가 역사에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계엄군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억압하고 진실을 감춘다.’ 전일빌딩 245에 남아 있는 생생한 탄흔이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수많은 기록들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을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일빌딩 245 꼭대기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한강 작가의 소설을 전시하는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광주 출신이다. 광주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열심히 읽는 시민들의 모습도 있었다.
나는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면서 이런 물음을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4일 만장일치로 계엄령을 위헌으로 판단하고 윤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하면 이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다만 그 판단의 바탕에는 광주사건으로 계엄령의 공포를 경험한 국민의 뼈아픈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이 국회에 투입됐을 때 몸으로 막아선 것 역시 많은 국민이었다.
시대착오의 길로 들어서던 한국의 현재를 과거가 도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무너져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길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많은 광주시민의 뇌리에 되살아난 것이 지난 44년 전의 악몽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 심리는 장기화됐다. 나는 한국의 많은 언론사가 기각이나 각하 가능성을 전한 것에 경악했다. 만일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판례가 되며, 한국의 대통령은 앞으로 윤 대통령과 같은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반세기 전 군사정권 시대로의 회귀이며, 한국인이 1987년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 체제가 끝날 수도 있다.
![]() 후쿠오카 시즈야 마이니치 신문 서울 지국장이 지난 2월 광주일보에 방문해 12·3 계엄 사태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
전일빌딩 245 꼭대기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한강 작가의 소설을 전시하는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광주 출신이다. 광주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열심히 읽는 시민들의 모습도 있었다.
나는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면서 이런 물음을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4일 만장일치로 계엄령을 위헌으로 판단하고 윤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하면 이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다만 그 판단의 바탕에는 광주사건으로 계엄령의 공포를 경험한 국민의 뼈아픈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이 국회에 투입됐을 때 몸으로 막아선 것 역시 많은 국민이었다.
시대착오의 길로 들어서던 한국의 현재를 과거가 도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무너져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길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