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배우는 농촌 어르신들
김동환 ㈜농업회사법인 구례삼촌 대표
2025년 04월 29일(화) 00:00
도시에서 30여 년을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귀촌해 작은 농업회사를 운영한 지도 어느덧 몇 해가 흘렀다. 그동안 농촌에서 생활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고 함께 일도 했지만 최근, 구례군에서 마련한 정보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금 큰 깨달음을 얻는 기회를 가졌다. 솔직히 도시에서 살던 시절, 그리고 이 교육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농촌의 어르신들이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편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골 어르신’이라는 말에는 종종 아날로그적이고 변화에 둔감한 이미지가 따라붙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이런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트렸다. 어르신들은 이미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했고 유튜브나 카카오톡 같은 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정과 적극적인 태도였다. 낯선 기능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주저 없이 질문하고, 메모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 학생들을 보는 듯 했다.

교육 중간, 휴식 시간에 몇몇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어르신은 “복지회관에 가면 이런 재미와 기쁨이 없는데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니 하루가 참 즐겁고 좋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 말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이곳이 어르신들에게 소통과 성취의 기쁨을 주는 공간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배운 디지털 활용 능력으로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작지만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다른 농민이나 가공품을 생산하는 업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해 보았다. 그랬더니 어르신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며 기대 어린 공감을 표현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어르신들도 스스로 지역 사회의 한 주체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요즘 주목받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는 농촌 어르신들의 실력을 펼칠 무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소개하고 소비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판매까지 진행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어르신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손으로 키운 농산물,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가공품을 소개하는 일은 단순한 판매 이상의 자부심을 안겨줄 것이다.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지역을 소개하고 손수 가꾼 농산물과 가공품을 이야기와 함께 전한다면 소비자들은 상품을 넘어 ‘사람과 삶’을 구매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농촌 어르신들의 진솔한 설명은 때로는 어떤 광고보다도 진정성이 있고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러한 활동이 확산된다면 농산물 판매를 넘어 지역 홍보와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새로운 기회로 발전될 수 있다. 어르신들이 지역을 소개하고 사람과 상품을 연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다. 이 과정은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라이브 방송 초창기에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지역의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으로 촬영, 편집 등에 관해 안내해 준다면 세대 간 벽을 허물고 농촌 공동체를 한층 끈끈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러한 협업은 농촌이 가진 고유의 따뜻함과 가족 같은 정서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하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현재 농촌은 고령화, 인력 부족, 농산물 유통 문제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어르신들의 디지털 도전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소중한 단서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정부, 지자체, 민간기업이 어르신들의 교육과 실습 기회를 꾸준히 지원해 준다면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농촌의 미래를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밝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시골 어르신들이 디지털을 통해 자신과 지역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이 여정은 아직은 작고 서툴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들의 배움과 노력이 이어지고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이 더해진다면, 농촌에도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새로운 기회와 변화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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