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극공동체 DIC ‘그대는 봄’
평생 의지해온 세 할머니 “봄 되믄 이쁜 옷 입고 꽃구경 가자”
장계네, 명길네, 민관이네 할머니
‘치매’라는 무거운 소재 다루지만
‘유쾌함’ 잃지 않는 따뜻한 무대
5월17일까지 소극장 공연일번지
2025년 04월 28일(월) 20:50
광주 동구 소극장 공연일번지에서 지난 24일 박경단, 문진희, 강인영 배우가 연극 ‘그대는 봄’에서 열연하고 있다. <연극문화공동체 DIC 제공>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오승근의 히트곡 ‘있을 때 잘해’는 곁에 있어야 할 대상이 없을 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잘 하라는 의미다. 특히 우리 부모의 시간은 바쁘다며, 피곤하다며 핑계를 대는 사이 더욱 빠르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치매 100만 시대, 내년이면 전국 치매 환자수가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삶, 결국 재로 남아 흩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삶이 있다. 바로 늙으신 우리 부모님들의 생이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삶을 허무하지 않게, 아주 유쾌하게 그려낸 연극이 있다. 바로 ‘그대는 봄’.

지역에서 꾸준히 창작을 펼쳐내고 있는 ‘연극공동체 DIC’가 지난 24일 소극장 공연일번지에서 평범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김정숙 작가가 극본을 쓰고 임홍석이 연출을 맡았다.

“아이고, 참말로 저기하다. 참말로 거시기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어르신들의 친근한 말투. 이야기의 중심에는 평생을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모진 희생을 감내해온 어머니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 다투는 장계네와 명길네, 그리고 두 사람을 늘 중재하는 착한 민관이네. 세 할머니는 화투를 치고, 아들이 사다 준 점퍼를 자랑하고, 동네 소식을 전하며 함께 늙어간다. 소극장의 작은 무대는 이들의 일상을 조금의 거리감 없이 펼쳐낸다. 관객은 마치 시골 평상에 앉아 그들의 수다를 엿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광주 동구 소극장 공연일번지에서 지난 24일 박경단, 문진희, 강인영 배우가 연극 ‘그대는 봄’에서 열연하고 있다. <연극문화공동체 DIC 제공>
하지만 웃음 속에도 외로움은 스며 있다. 자식과 연락이 끊긴 민관이네, 사별 후 강아지와 단둘이 사는 장계네, 언제나 아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명길이네. 외로움을 감춘 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착한 민관이네가 치매 진단을 받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친구를 위해 장계네와 명길네는 동분서주하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장계네 강아지인 순심이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함께 순심이를 묻어주던 세 할머니는 한가지 약속을 한다. “우리 봄 되믄 이쁜 옷 입고 꽃구경 가자”

작품은 소극장만의 친밀한 매력을 극대화하며 관객과 배우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특히 무대 위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 인상 깊다.

민관이네가 치매 진단을 받는 장면에서는 배우가 관객을 향해 소리친다. “바쁘다고 안 오고, 멀다고 안 오고, 돈 없다고 안 오고!” 어떤 관객은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가?”라며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공연 중 갑작스레 지목당한 한 관객은 무대 위에 ‘의사 역할’을 맡았고, 장계네, 명길네, 민관이네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할 때는 관객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광주 동구 소극장 공연일번지에서 지난 24일 박경단, 문진희, 강인영 배우가 연극 ‘그대는 봄’에서 열연하고 있다. <연극문화공동체 DIC 제공>
작품의 가장 빛나는 매력은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모님의 치매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시울이 붉어질 듯한 순간, 경쾌한 트로트와 신나는 댄스가 무대를 채우며 다시 한 번 환한 웃음을 끌어낸다.

슬픔과 웃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관객들은 부모님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무대는 오래도록 여운을 준다.

임홍석 연극공동체 DIC 대표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였을 평범한 세 할머니의 시원시원한 유머와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이들에게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그대는 봄’은 오는 5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전석 2만5000원. 티켓링크 예약.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5841000783319007
프린트 시간 : 2025년 04월 30일 14:4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