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유감-박진표 경제부장
2025년 04월 24일(목) 00:00
수수료는 오래 전부터 경제 질서의 일부였다. 고대 로마의 ‘아르젠타리우스’(은전 중개상)는 거래할 때마다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았고 중세 상인들은 통행세와 시장세를 지불하며 상업 질서를 유지했다. 근대에 들어 증권 중개인이 정착되며 ‘정해진 수수료율’은 공정 거래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모든 경제 질서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가 존재한다”고 했다. 수수료는 보이지 않는 대가의 상징이자 거래를 매개하는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 즉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수료는 제도권 안에서 정착했다. 1960~70년대 증권시장 육성과 함께 ‘매매수수료 고시제’가 도입됐고 금융·부동산·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정한 규제 아래 수수료 체계가 형성됐다. 그 기반은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었다.

이러한 수수료 구조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로 들어서면서 더 이상 ‘합의된 규칙’이 아닌 ‘일방적 통보’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배달 플랫폼이다. ‘배달의민족’은 이달부터 업주들의 반발에도 포장 주문에 6.8%의 중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창출된 수익은 지역 경제로도 환류되지 않는다.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2023년 4조 3000억원의 매출과 61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은 국외로 빠져나갔다. 광주시민이 낸 수수료가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외국계 모기업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예외도 있다. 광주시가 지원하는 ‘광주형 공공배달앱’은 중개 수수료를 2.5% 이하로 낮추고 포장주문에는 수수료를 면제한다. 기술이 아닌 정책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설계하려는 실험이다.

하지만 시민 대다수는 여전히 공공의 이익이나 공정성보다는 익숙한 ‘배민(배달의민족)’을 클릭하고 있다. 배민 역시 수수료 인상에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대형 배달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거대 자본이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힘은 결국 시민의 손끝에 달려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luc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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