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날 - 김경련 아동문학가·고려중 교사
2025년 04월 22일(화) 21:30
서울에 행사가 있어서 올라가는 날이었다. 아이 결혼식 때문이었는데 하필 그날이 학교 스포츠데이여서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뙤약볕 아래 ‘영차! 영차!’ 학생들과 함께 보냈다. K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내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학생들 찍어준 사진을 보며 마치 여행처럼 즐기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피곤했는지 휴대폰을 쥔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역’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나갔는데 호텔에 도착해 보니 분명 가방 안에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었다. 역에 전화해 보았는데 혹시 찾게 되더라도 내일 행사 끝나고 찾으러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하지 않던가. 스스로 위로하며 그냥 잊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편했다. 아주 급한 연락은 남편 휴대폰이 있으니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늘 애인처럼 끼고 살던 휴대폰이 없으니 허전한 마음이 더했다.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을 때도 다른 때 같으면 아마 잠깐 쉴 때마다 연락할 일이 없어도 휴대폰을 열어 보고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사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좋은 점이라면 나의 두 손과 눈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은 온전히 하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만약 핸드백 안에 휴대폰이 있었다면 안 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휴대폰이라는 손안의 기계에 저당 잡히고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은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에 이어 패스트휴대폰 시대다. ‘환경에 관한 가치관과 소비 생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는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3일간 휴대폰 없는 날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했더니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해보자 하여서 수행해보기로 하였더니 동의했다. 그렇게 하여 발표하기로 하였다. 설문지를 나눠 주고 표시하게 했더니 몇몇 학생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친구랑 연락을 못하고 시계를 볼 수 없어서 답답했다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견딜만 했다 괜찮았다고 하였다. 그런 거 보면 없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모두 없는 것 하고 나 하나만 없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가져 본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볼 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때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지금 다시 그 책을 보고 싶다. 달팽이가 느리게 가는 것 같아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은 가는 것처럼 조금 느림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생활도 필요할 땐 휴대폰으로 소통한다. 편리함으로 치자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는 날로 정하면 실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루쯤 집에서 안 가져온다고 큰일이 생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이 학교에 못 오는 이유를 알아야 할 때는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유선 전화라는 차선책도 있지 않은가. 다행히 완전 불통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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