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발견] 400여년 빙월당 툇마루에 앉아 세속의 찌든 마음 훌훌~
[ <2> 광주 광산구 월봉서원]
조선 유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 학덕 추모
1578년 호남 유생들 망천사 세우며 시작
1941년 빙월당 지으며 서원 모습 갖춰
정면 7칸·측면 3칸 예스럽고 소박한 정취
‘선비의 하루’·‘살롱 드 월봉’ 대표 프로그램
향교·서원 체험 통해 ‘소통의 장’ 진화
2025년 04월 22일(화) 09:00
월봉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광주시 광산구 임곡에 가면 40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름 그대로 넓은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광곡(廣谷) 마을이다. 행주기(奇)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인 이 곳은 백우산(白牛山) 품에 안겨 있어 정겹게 느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을회관 옆에 자리한 고봉 학술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을 끼고 긴 돌담과 흙담이 이어지는 대숲길은 잠시나마 번잡한 일상을 잊게 할 만큼 아늑하다. 학술원을 지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남정신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월봉서원이다.



월봉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고봉은 스물 여섯의 나이차를 뛰어 넘어 사상적 교류를 나눴던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한 성리학자다. ‘월봉’이라는 서원명은 1654년 효종이 내린 것으로,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년 호남 유생들이 지금의 광산구 신룡동에 ‘망천사’라는 사당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1868년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월봉서원은 문을 닫았지만 1941년 지금의 위치에 빙월당을 지으면서 새롭게 서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월봉서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작은 개울을 지나 원의 정문인 외삼문, 일명 망천문(望川門)을 넘어야 한다. 문의 한 가운데 새겨져 있는 태극문양이 시선을 끈다. 단정하면서 고풍스러운 문양이 전체적인 외삼문의 구조와 조화를 이룬다.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양 옆으로 동재(명성재)와 서재(존성재)라는 글씨가 적한 건물 두 채가 자리하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명성재는 배움에 있어서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성의를 다하라는 의미로, 주로 하급생들이나 평민층 자녀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자기를 성찰한다는 뜻의 존성재는 상급생이나 양반집 자제들이 기거했던 공간이다.

잔디밭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빙월당(氷月堂)’이 보인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이자 월봉서원의 주강당이다. 고봉의 깨끗한 성품과 고결한 학덕을 기리기 위해 표현한 ‘빙심설월’(氷心雪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가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눈 내리는 달밤의 차가운 마음은 예리한 통찰과 지고한 학문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월봉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월봉서원은 ‘선비의 하루’, 살롱 드 월봉,‘달의 정원, 월봉서원’ 등 다양한 국가유산활용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 제공>
빙월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 아래 펼쳐진 팔작지붕의 건물은 평온한 기운을 준다. 부드러운 곡선과 모나지 않는 전체적인 조화가 일품이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이는 것은 빙월에 값하는 정신과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연하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원 뒤쪽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고봉 선생 부부가 묻힌 묘와 그가 생전에 학문을 강론했다는 귀전암터를 거쳐 백우산 전망대, 백우정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다.

월봉서원이 지닌 매력은 예스럽고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빙월당의 툇마루에 앉아 바라다 보는 호젓한 마을 모습은 세속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무엇보다 박제된 사원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실제로 월봉서원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살아있는’ 소통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다양한 향교·서원 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다.

지난 2014~2016년까지 3년 연속으로 광산구는 국가유산청이 공모한 생생문화재,향교서원(월봉), 유교아케데미,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월봉서원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특히 광산문화원 등 공공기관과 ‘교육문화공동체 결’, ‘라우’, ‘상상창작소 봄’ 등 젊은 문화기획자 그룹과 의기투합해 만든 프로그램들은 월봉서원을 시민들에게 알린 매개체였다.

특히 올해는 ‘달의 정원, 월봉서원’, ‘무양 in the city(무양서원)’ 2개 사업으로 옛 선인들의 지혜가 깃든 향고·서원 대중화에 나선다. 조선 성리학과 월봉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비의 하루’, ‘살롱드 월봉’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달의 정원, 월봉서원’은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 활용 10대 대표 사업’에 선정됐다.

이들 가운데 ‘선비의 하루’는 간판 프로그램이다. 초·중등학생과 가족 30명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서원을 출입한 선비들의 일상을 쉽고 친근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유생복 차림으로 숭덕사 배례, 철학자의 길 산책, 투호 놀이마당, 향사례 체험, 전각 체험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 정신과 몸, 사람과 사람간의 조화로움을 경험한다.

월봉서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조형물 ‘달의 정원’.
월봉서원의 브랜드인 ‘살롱 드 월봉’도 빼놓을 수 없다. 고품격 인문 문화 교류 마당이란 타이틀을 내건 ‘살롱 드 월봉’은 조선의 휼륭한 문사들이 모여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던 계산풍류를 의미한다. 다담, 문화공연, 주제가 있는 이야기 마당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시대의 풍류를 월봉로맨스, 자경야담, 오페라 조선 브로맨스, 탄소중립 등 4개의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이와함께 아이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꼬마 철학자 상상학교’, 강좌와 공연 등이 어우러진 ‘철학자의 부엌’, ‘청소년 이기(理氣)진로 교실’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연중 펼쳐진다.

월봉서원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국가유산 활용사업’의 성공사례로 선정된 데에는 광산구의 적극적인 지원과 문화행정이 있었다. 광산구는 지난 2017년 백옥연 문화재활용 전문위원(현 문화유산활용팀장)을 선발, 지역 최초로 팀을 신설해 월봉서원이 문화재활용 부문에서 전국의 대표서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를 했다. 또한 문화재청의 평가에서 3년 연속(2014~2016년) ‘우수사업’으로 선정돼 ‘명예의 전당상’을 수상했고,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비밀의 서원, 월봉’으로 ‘지역문화 대표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또 한국관광공사의 ‘유니크베뉴’,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등 월봉서원은 문화재 활용의 성공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백옥연 팀장은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거점이자 제향이었던 서원은 한때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졌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문중들과 지자체들의 정책 지원으로 현재 전국에 향교 234개소, 서원 약700여 개소가 문화재로 남아 있다”면서 “광산구는 월봉서원과 고봉의 사상, 삶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서원의 대중화, 가치화, 브랜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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