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썩음’ -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2025년 04월 18일(금) 00:00
해외 유명 대학이 한 해의 단어로 ‘뇌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뇌의 기능 저하를 다소 자극적인 ‘썩음’으로 표현한 이 단어는 현재 한국의 정치 풍경 속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뇌썩음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과잉소비해 집중력 저하, 문해력 약화 등 지적으로 퇴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파면 등을 겪으면서 뇌썩음 현상은 양 극단을 만들어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종교와 학계, 정치세력은 뇌썩음을 통해 자금과 투쟁의 원동력, 지지율 등을 이끌어 냈다. 전광훈 목사 일파는 종교보다는 ‘목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며 헌금을 걷고 길거리 투쟁을 이어갔다. 그의 말은 상식과 사실에 크게 어긋났지만 추종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을 외쳤다. 손현보의 세이브코리아도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며 거친 언어를 쏟아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같은 뇌썩음 과정에 정치권과 학계 등이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한길은 SNS와 길거리에서 궤변을 쏟아냈고 일부 정치인도 유언비어에 맞장구를 치며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

‘성급한 일반화 오류’를 범할 때 종종 등장하는 것은 권위와 위상이 있는 인물의 말과 판단이다. 목사나 교수, 정치인들의 말을 무턱대고 진실과 사실로 믿는 오류를 자주 범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최근 6개월 사이, 수많은 성급한 일반화 오류 속에서 부정선거를 믿고 법원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뇌썩음을 조장한 정치권과 종교, 학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유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뇌썩음 현상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여부다. 전광훈 목사 일가는 헌금 이외에도 알뜰폰 판매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선거를 설명하고 계엄을 ‘계몽’이라고 칭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국민의 후원을 부탁했다. 정치인들은 극한의 갈등을 통해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뇌썩음 현상의 피해자는 누구 일까. 결국 국민이다. 정치 혼란으로 한국의 신용도가 하락하고 경제 성장이 멈춰버린 피해는 국민이 오랜 시간 피땀을 흘리며 갚아야 할 부채로 남았다.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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