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쓰는 것이 ‘자존’이고, 스스로 즐기는 마음이 ‘독락’이죠”
고재종 시인 등단 40주년 기념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 발간
오는 25일 오후 6시30분 5·18기록관서 출판기념회
2025년 04월 17일(목) 20:00
고재종 시인
자존(自存)과 독락(獨樂). 깊은 철학적 사유와 의미가 투영된 용어다. 자존과 독락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자는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 존중하며 품위를 지킨다’는 의미를, 후자는 ‘혼자서 즐긴다’라는 뜻을 지닌다.

자존(自存)과 독락(獨樂)은 가벼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우직하게 걸어온 이에게 합당한 말이다.

고재종 시인. 그는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그의 삶을 집약한다면 자존(自存)과 독락(獨樂)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40 년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고재종 시인이 최근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문학들)을 펴냈다.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시선집은 시인의 문학 여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출간 소식은 들었지만 이런 저런 일로 통화가 늦던 차에 출판기념회 소식이 들려왔다. 뒤늦은 전화였지만 시인은 차분히 지나온 문학인생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그는 “이번 시집의 주제랄 수 있는 ‘자존’과 ‘독락’은 옛 선비들이 추구했던 지고한 의미와는 다르다.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쓰는 것이 ‘자존’이고, ‘독락’은 스스로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 공부를 하던 독학 시절 ‘시를 이렇게 써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독자들이나 평단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상도 받다보니 너무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듣고 보니 그가 상정하는 자존과 독락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혼자여만 득할 수 있는 축복이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스스로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치열하게 투쟁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 유유자적하는 것이죠. 물론 현실 도피나 무관심하고는 다른 개념이죠. 혼자임에도 스스로 감수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자존과 독락은 그런 의미이고 시들 또한 그런 틀에서 읽혀지고 공유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시선집에는 지금까지 출간된 10권의 시집에서 가려 뽑은 150여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대부분 독자나 평론가들로부터 회자되거나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현재 시인은 고향인 담양에서 칩거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사시던 수북면의 집을 수리해, 세상일에서 한발 비켜나 ‘자존’과 ‘독락’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은 혹독한 가난의 연속이었다. 집안이 죽세공으로 연명하느라 도회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읍내 농고에 입학한 그는 몸이 약해 이마저도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손에는 늘 소설집과 시집과 같은 문학서적이 들려 있었다. 서울과 부산 등 전국을 떠돌면서도 문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십대 중반에 우연히 창비시집을 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일주일 만에 20여 편의 시를 써서 ‘실천문학’에 보냈다”며 “이후 ‘동구 밖 집 열두 식구’ 등 7편이 실천문학 신작 시집 ‘시여 무기여’에 수록되게 됐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그는 혼자 시를 썼고 ‘시인’이 되었다. 결국 문학은 ‘자신과의 외로운 투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고 시인은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라며 “시를 버리지 못하고 40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돌아보니 그 자체로 스스로 내 자신에게 대견한 일인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한편 최진석 시인은 ‘고독한 길녘의 시학’에서 “고독한 길녘의 시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산책자가 산책을 마다하지 않았고 시인이 작품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까닭이다”며 “시인의 마음으로부터 사방세계로 번져갔던 서정의 흐름은 길과 길 아닌 곳을 지나 또 다른 길을 열어가는 한, 시의 노래르 결코 그칠 수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지금까지 고 시인은 시집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 등 10권, 산문집 ‘감탄과 연민’, 시론집 ‘시를 읊자 미소 짓다’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선집 발간 출판기념회가 오는 25일 오후 6시 광주 5·18기록관에서 열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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