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역사 ‘무등산’의 풍경과 서사를 바라보다
임채욱 사진작가 ‘무등산’전
27일까지 은암미술관
‘꽃 피우는 윤상원’ 작품 눈길
2025년 04월 09일(수) 20:25
임채욱 사진작가가 오는 27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무등산’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무등산 2402’.
무등산은 광주를 상징한다. 광주는 무등산이기도 하다. ‘등급이 없는 고귀한 산’ 이라는 뜻의 무등산은 언제나 말없이 민초들을 품었다.

역사적 격변기에는 시민들과 함께 아파하며 불의한 시대를 건너왔다. 김준태 시인은 80년 5월 당시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에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라고 울부짖었다. 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무등산은 상처 입은 광주와 시민을 상징했다.

무등산은 일상의 휴식처이자 힐링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떤 이에게는 철학적 사색의 대상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체였다. 생전에 ‘무등산 시인’으로 불렸던 광주 출신 범대순 시인은 1100여회나 무등산을 올랐다. “나의 산행은 잃어버린 무등산의 원시를 찾아가는 고산고수(苦山苦水)의 길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무등산
시민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무등산의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는 27일까지 은암미술관(관장 채종기)에서 진행 중인 임채욱 사진작가의 ‘무등산’전. 임 작가가 지난 1년 6개월간 작업한 무등산의 풍경과 서사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채종기 관장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작업의 초점이 작가가 아닌 무등산이라는 데 있다”며 “무등산이 주체가 된 시선으로 담아낸 광주 서사와 풍경은 색다른 사유와 감성을 발한다”고 전했다.

임채욱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전국의 명산들을 렌즈에 담아내는 작업을 펼쳐왔다.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50여회 전시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도이치뱅크, 하버시티 홍콩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금까지 ‘북한산길’, ‘블루마운틴’, ‘지리산 가는 길’ 등 9권 사진집을 펴냈다.

4·19와 5·18로 대변되는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이 투영된 것처럼 무등산은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언급한 대로 이번 작업은 작가 시선보다 무등산의 시선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무등산을 주체이자 주인공으로 소환한 것이다.

전시는 모두 4개 주제로 구성돼 있다.

1부 ‘광주의 역사를 지켜본 산’에서는 천왕봉을 비롯해 지왕봉, 인왕봉, 서석대, 입석대, 규봉암, 누에봉, 중봉, 장불재 등을 만난다. 눈꽃이 핀 인왕상과 독특한 형상의 입석대는 경외감을 준다.

2부 ‘무등산 의재길’은 의재미술관과 춘설원 등의 풍경을 담았다. 화가이자 교육자, 사회운동가인 의재의 정신이 깃든 미술관, 의재가 국내외 명사들과 교유했던 공간들이 소개돼 있다. 특히 춘설차 전통을 재해석한 차를 선보이는 ‘티에디트’도 렌즈에 담았다.

5·18 민주화 길과 연계된 장소도 있다. 제3부 ‘무등산 오월길’은 금남로, 전일빌딩245, 5·18 민주광장, 전남대학교, 5·18 민주묘지 등은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작가는 작업의 시선을 무등산 정상부터 산 아래로 내려가며 광주시를 보여준다.

‘꽃 피우는 윤상원’ 앞에 놓인 광주일보 ‘윤석열 대통령 파면’ 호외신문.
특히 3부에서는 ‘꽃 피우는 윤상원’이라는 작품이 이목을 끈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를 형상화한 작품 아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관련 호외 발행 신문(광주일보)이 놓여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숭고한 희생을 상징하지만, 민주주의로 새롭게 피어나는 의미를 함의한다.

마지막 4부는 ‘무등산 물들길’에서는 서정적이며 운치가 감도는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무등산을 둘러싼 남도의 절경과 영산강, 화순적벽 등이 나온다.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명옥헌, 광주호의 풍광은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한편 문광용 문명비평가는 “무등산을 나 같은 외지인들은 광주의 앞자락을 담당하는 조그마한 뒷산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산을 조금이라도 올라가 본 이들이라면 무등산이 얼마나 거대하고 품이 넉넉한 곳인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며 “드라이브를 한다면 임채욱 작가의 무등산 영상 작품처럼 말러 교향곡 3번과 함께하는 것도 멋진 선택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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