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계로 사는 삶에 대하여-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5년 04월 07일(월) 00:00
요즘은 마치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사는 듯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르게 가는 두 개의 시계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쪽에 맞춰야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이 두 개의 시계가 서로 다른 시간대로 가면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불행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두 개의 다른 시간대에서 사는 것은 함께 일어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동시에 일어나며, 나란히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이런 모습은 한 사람이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현상을 두고 ‘비 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말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가 말한 개념이다. 블로흐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것처럼 사람들이 현재의 시간대에 함께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상황과 주변을 볼 때 너무나 쉽게 이해와 공감이 되는 말이다.

블로흐가 말하는 비 동시성의 동시성은 그 당시 독일 사회를 규정하는 표현이다.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 독일은 1870년대의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전근대적인 시대였다. 이미 민주화된 헌법이 있었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문화도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독일은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와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시대적 역주행을 멈추지 못했다. 이러한 모순과 역행의 시대에서 블로흐가 주목한 것은 같은 시대를 살지만 “다만 외형적으로만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라는 현상이다. 외형적으로 동일한 시대를 산다는 것,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갈등하며 고통을 겪는 문제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겉으로는 하나의 사회에 속하며, 친밀한 집단과 관계 속에서도 분별력과 판단력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서로가 다른 시계를 차고 다른 속도와 방향의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없는 현상들이 보여주는 다른 시간대의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곧 비 동시성에 속한다. 즉, 함께 나란히 있을 수 없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비 동시성이다. 하지만 함께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 버젓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동시성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 동시성의 동시성을 행하고 겪으면서 고착시키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수많은 이유로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성적 사고와 민주적 자유를 말하면서 타인의 생각과 자유는 인정하지 않거나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의식은 여전히 봉건적 시대와 권위주의의 시계에 맞춰져서 돌아가는 것을 흔하게 본다. 그 예가 자신의 판단과 선택은 절대화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인맥과 학맥, 심지어 죽은 조상과 무술까지 동원하고 이용하는 태도다. 이보다 비 동시성의 동시성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러니 자기 능력과 노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인간관계의 목적인 상호적 발전, 책임은 사라지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의리와 도리가 윤리와 책무를 대체한다. 바로 두 개의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이자 이유다.

겉보기는 미래지향적 의식으로 충만해 보이고 또한 이에 상응하는 태도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위장과 위선은 오래 갈 수 없다. 시대정신과 동행하는 변화와 선택은 결단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만의 의식과 태도는 요란하고 화려하게 보여도 한순간에 본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살아 숨 쉬지 않는 의식은 뒤로 돌아가는 시계에 집착한다. 그리고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은 미래를 잉태하지 못하고 오직 불화와 대립 그리고 반목만을 반복한다. 뒤로 가는 시계는 앞으로 나가는 시계를 붙잡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두 개의 시계를 사용할 것인가. 마침내 한 고개를 넘어선 듯하다. 이제 오직 하나의 시계, 주저함이 없이 앞을 향해 나가는 시계만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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