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셀프로- 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5년 04월 04일(금) 07:00
오랜 동안 알고 지낸 스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며칠 전에도 송광사에서 만나 차를 마신 터라, 놀라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송광사 다비장에 모인 스님들은 한결같이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을 아쉬워했다. 다들 비슷한 나이대라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놀랐지만, 조금 지나니 이젠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차도 마시던 사람이 이렇게나 갑자기 죽다니… 나도 저렇게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 그럴지도 몰라….” 스님의 갑작스런 죽음은 나의 생존본능을 의식의 수면위로 급부상시켰다.

다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 아직은 스산한 주암호의 겨울이 스쳐 지나간다. 온갖 망상이 머리 속을 헤집는다. “행복하게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이젠 정말 나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먹는 것도 기왕이면 맛있는 걸로, 보는 것도 좋은 것만 보고, 기왕이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니면 누가 또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길까? 나라도 좀 더 많이 나를 사랑해야겠어.” ‘더 늦기 전에 나를 사랑하자!’는 외침이 겨울 찬바람처럼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지나간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나를 향한 사랑으로 가슴이 일렁인다. 사실 우리들은 지겨울 정도로 스스로를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이 제대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내가 선호하는 취향과 기호,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습관 같은 것들은 나에 대한 애착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런 애착은 생존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나의 잘못된 습관, 부정적인 성격들이 싫다. 그런 내가 싫다. 그런데도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말도 안돼!”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지 증오가 아니다. 증오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왜 나를 혐오하는가? 내가 원하는 기준을 지금의 내가 채워주지 못하고, 나를 온전하게 정신적으로 소유하고 지배하지 못하고, 내가 내 뜻대로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재산, 내가 쌓아올린 명예, 나의 스팩, 나의 경력과 인맥…. 한마디로 나의 총체적인 자원 역시 내가 애착하는 대상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총체적인 자원을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런 자원은 객관적으로 대상화하기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비교를 동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우월하다면 사랑할 것이요, 뒤쳐진다면 혐오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사랑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타인을 향한 사랑과 다를 것이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별반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오래 오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라는 본능적인 외침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오래 오래’는 노골적으로 ‘영원히’라고 말하지만 않았을 뿐 그에 버금가는 시간을 담고 있다. 무형의 취향, 개성, 성격. 아니면 유형의 재산, 스팩, 인맥. 이 모든 것들은 사랑의 대상이자 지난 날 내가 행한 행동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동을 업(業)이라고 하며, 업의 결과를 과보라고 한다. 좋은 업을 지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업을 지으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나는 모두 지난 업의 결과이다. 중생들의 사랑은 대체로 이와 같다. 내가 사랑하는 나는 기껏해야 나의 흔적, 나의 과거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짓는 업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곧 지금 내가 좋은 업을 짓기 위해 매순간 노력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고통에 이르게 하는 행동을 하는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업은 좋은 과보를 낳을 것이고 좋은 과보란 결국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의미한다. 한편 지금의 행동은 미래의 나를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함은 곧 미래의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나를 대상화시키면 자신을 소유하고 집착하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자비심으로 자신을 응원하면 날로 성장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짓는 좋은 행동, 선한 업 그 자체가 곧 나에 대한 사랑이다.

먼저 간 스님을 생각하며, 나의 생존본능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치장하려 한 알량한 이기심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인생은 결과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다. 인생은 끝없는 과정이자 쉼없는 행위이다. 산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을 수 없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3717600782170129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01일 12:2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