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해야 할 대상, 영화…80여 편의 이야기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오동진 지음
2025년 03월 21일(금) 00:00
“…이런 영화는 마치 3단 케이크를 먹는 일과 같아서 세 가지 케이크가 입안에 들어가는 형국이다. 하나는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가수의 인생 이야기이며, 마지막 하나는 세상과 시대 얘기다. 예컨대 말릭 벤젤룰이 만들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서칭 포 슈가맨’이 바로 그런 경우다.”

지난 2022년 5월 개봉된 다큐 ‘아치의 노래, 정태춘’(감독 고영재).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노래’, ‘가수’, ‘시대’로 이뤄진 3단 케이크를 매개로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 등으로 영화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차라리 내 글을 통해 영화를 보거나 읽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를 찾은 관객들. /연합뉴스
신간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는 오동진의 4번째 영화평론집이다. 앞서 ‘오동진의 인문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작은 영화가 좋다’(2016년)와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사랑처럼’(2020년), ‘당신은 영화를 믿지 않겠지만’(2022년)을 펴냈다. 이번 책은 지난 2년간 다양한 매체에 실었던 한국영화와 독립영화, 미국·일본·프랑스·핀란드 등 해외 영화, 넷플릭스 영화 등 모두 83편의 작품 리뷰를 모았다. 갱스터 무비와 액션 누아르, 사무라이 검객 영화, 음악영화, SF,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장르도 다채롭다. ‘최고의 나쁜 놈은 누구일까’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 천명관이 연출한 영화 ‘뜨거운 피’(2022년)를 펼쳐보자.

“‘세상은 멋있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고 시발놈이 이기는 거… 이 바닥 최고의 시발놈 아닙니까.’ 이걸 부산 억양의 말로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최고의 시발놈’이란 말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희수가 포주 남자에게 하는 ‘찰진 대사’를 인용한 문장을 읽다 보면 행여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머릿속에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영화 글을 써오고 있는’ 저자는 “어느덧 내가 영화를 보기 보다는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영화는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점점 굳히게 됐다”고 밝힌다. 저자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는 문장 속에 다양한 영화·다큐가 녹아든다. 현란한 문장 속에서 저자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진정성이 은연중 발산된다.

“세상은 똥이다. 똥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똥을 더러워하거나 무시하거나 피하거나 남에게 던지거나 하면 안 될 일이다. 그 같은 깨달음이 세상을 바꾼다. 변혁은 거기서 시작된다.”(사카모토 준지 감독 ‘오키쿠와 세계’) “한국에서 봉준호가 칼 마르크스 라면 박찬욱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아니 그 둘을 합친 에리히 프롬과 같다.”(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저자는 같은 SF 장르인 ‘원더랜드’(WONDERLAND·감독 김태용)와 ‘애프터 양’(AFTER YANG·감독 코고나다)을 비교하며 자신의 영화비평 원칙중 하나를 드러낸다.

“…세상인식에 대한 오류, 그 부조화가 이 영화와 관객을 만나지 못하게 한 셈이다. 평론의 3원칙중 하나는, 평론은 감독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가 되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이 그 원칙을 지켰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영화 ‘와일드 이즈 더 윈드’(Wild is the Wind)와 다큐 ‘노란문: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등 넷플릭스에서 볼수 있는 작품들도 영화비평 대상으로 삼았다. 영화 ‘카터’의 경우 “한 나라의 영화제작 환경을 이렇게 습관화 시키면 안 된다”면서 “영화는 이야기가 앞에 서있어야 한다. 액션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앞에 세우면 꼭 탈이 난다. 진심의 충언이다”고 지적한다.

독자들은 신간에 실린 영화를 때로 리듬감 있게, 때로 음미를 하며 ‘읽어’가다 자신과 공명(共鳴)하는 미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인생 영화’ 한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썰물과밀물·1만8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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