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포도책방’] 한 공간에 128개 책방 … 사는 이도 파는 이도 ‘모두가 주인’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쓰였던 역사 공간
137개 책장 크기 따라 내는 임대료로 운영
책방지기 30%가 타지인…10~70대 다양
각각의 책장, 각양각색 큐레이션 ‘재미’
직접 쓴 책·굿즈 판매, 북토크 진행도
책방 연계해 비어있는 원도심 공간 활용
소멸하는 로컬 살리는 베이스캠프 역할
2025년 03월 18일(화) 19:40
128개의 책방을 열고 있는 목포 ‘포도책방’은 로컬의 힘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목포 포도책방에 들렀을 때,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알 한 알이 모여 탐스런 포도 송이를 이루듯, 128명의 책방 주인이 책을 파는 공간에 더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작은 책방 주인’.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담아둔 꿈이지 않을까. 포도책방은 그들의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준 곳이다. 비록, 작은 책꽂이 한 칸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책방 주인의 ‘작은 우주’가 담겼다. 서점을 ‘즐겨보기’로 작정한다면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헤어나지 못한다. 무려 128개의 책방을 만나는 셈이니 말이다.

신안군 수협 목포지점 건물 뒷쪽 2층에 문을 연 포도책방은 근대건축물과 코롬방 제과 등 목포의 핫스폿과 인접해 있다. 낡은 나무 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제시대 조선미곡주식회사의 창고로 쓰였던 공간은 오랫동안 비어 있다 지역독립영화관 목포시네마라운지 MM으로 이용됐었다. 영화관이 옮겨간 후 다시 문을 닫았던 건물을 도시기획자 조반장(조경민)이 임대 받아 책방으로 꾸몄다.

포도책방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점이다. 60평의 넓은 공간에는 수많은 책장이 놓여 있다. 건축을 전공한 조반장은 공간 레이아웃을 직접 하고, 대형 원형 책장 등도 제작했다. 137개의 책장은 128명의 주인이 다시 임대해 운영한다. 서점은 지난 2월 20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고, 오픈 전에 책장 임대가 모두 끝났다.

“어느 정도 호응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서점 문을 열기는 해야 하니 ‘샘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요청했죠. 금방 입소문이 나면서 판매가 모두 끝나 당황했어요.(웃음) 3개월 단위로 판매 예정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1년 계약을 해서 대기자들이 많습니다. 책장을 더 늘려야 하지 않나 싶네요.”

책방 주인의 이름과 소개가 적힌 각각의 책장.
책방 주인은 책장 크기에 따라 한달에 1000원부터 3만원까지 회비를 내고 책방을 운영한다. 운영자는 목포 사람이 70%이고, 20%는 타 지역, 10%는 목포 이외의 광주·전남 지역 사람이다. 신간과 헌책 모두 취급하며 판매금액은 5대5로 나누고 굿즈는 판매액의 20%를 받는다.

목포 출신인 조반장은 고등학교까지 목포에서 다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문화기획자, 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나이 들면 언제가 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 온 그가 포도책방 형태의 서점을 오픈 한 건 책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다양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립책방의 장점은 주인장의 특성을 살린 개성 있는 큐레이션입니다. 이것도 좋지만 서점에서 좀 더 다채로운 책을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책방을 열 때 너무 제가 좋아하는 책들만 잔뜩 가져다 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했어요. 저처럼 책방 주인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죠. 그래서 그분들에게 작은 공간을 빌려드리자 싶었어요.”

수익을 위해 대부분의 동네서점이 북카페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그 역시 처음에는 커피 판매를 고려했지만 ‘서점이고 싶다’는 생각에 판매를 접었다.

서점에서는 책 뿐 아니라 굿즈 등 다양한 물품도 판매할 수 있다.
각각의 책장은 주인장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점 주인은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하며 엄마와 딸, 부부가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 양소희 작가의 ‘여행책방’에서는 직접 쓴 책, 굿즈, 사진을 판매하고 ‘스토리가 있는 여행사진’전도 열고 있다.

원도심 포도원 횟집 사장은 ‘포도원 서점’을 열었고, 지구를 돌아다니다 목포에 정착해 ‘0원으로 살고 싶은’ 호모루덴스 방도르의 ‘X에서 Y로’ 서점은 책 판매 대금을 김, 미역, 쌀 등으로 물물교환도 한다. 레베카 솔닛 등 ‘걷기’에 관한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장도 인상적이며 경험수집가 ‘늘’의 서재 ‘퀘렌시아’는 사람과 사람, 일과 사회 등의 주제로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독립투사 김알렉산드리아의 정신을 되새기는 ‘알렉산드리아 서점’, 일일이 손글씨로 책 소개를 남긴 ‘럭키의 낭만 행복사랑’, 남친이 남긴 밑줄을 주의하라는 재치있는 글을 적은 ‘헌책팔이 소녀’, 목포환경운동연합의 ‘지구를 살리는 책방’ 등도 눈길을 끈다. 그밖에 ‘영화로운 상상’ ‘그러나 책방’ ‘비밀 서랍’ 등 각각의 책방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방 가꾸기에 열심인 주인, 책장을 잘 가지고 노는 주인들은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스스로 ‘이달의 책’을 선정하거나 블라인드 북, 아는 척 하기 좋은 책을 판매하고 딱 한 권만 파는 사람도 있다. 선의의 경쟁이 붙고 좋은 기운은 전염된다. 조반장은 ‘콜렉터의 등장’에 주목한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많이 보는 책방 점주들이 출판사, 서점, 독자 사이에 존재하며 소비자들의 ‘책읽기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서점에서는 책 뿐 아니라 굿즈 등 다양한 물품도 판매할 수 있다.
유명 작가를 초청하는 여느 책방의 북토크와 달리, 포도책방의 북토크 주인공은 책방 주인들이다. 포도책방에 서점을 연 기자 출신 이주빈 시인이 첫번째 북토크를 진행했고, 열아홉에살에 출판사 ‘틈새의 시간’를 차린 이채진 대표 등이 예정돼 있다. 문을 연 지 한달도 안됐지만 신기하게도 대구, 강원도 인제 등 타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벌써 ‘단골 책방’을 만든 손님도 있고, 우연히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만났을 땐 함께 기념 사진도 찍는다.

조반장은 포도책방의 성공 원인 중 하나로 ‘재미’를 꼽았다.

“서점이 책을 사고 파는 공간, 지식의 교류의 장이라는 의미와 가치를 넘어서 즐겁고 재미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면 안착하기 어렵죠. 좋아하는 책과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소개하고 그 책이 팔리는 걸 즐거워합니다. 포도책방은 의미와 가치, 태도와 스타일, 재미와 취향까지 다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좋아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며 커뮤니티의 중요한 미래가 될 수 있다 생각해요.”

포도책방을 운영하는 조반장.
포도책방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로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조반장 역시 포도책방을 “로컬 기획의 베이스캠프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30년 넘게 서울에서 일해온 그는 언젠가는 ‘지역’으로 내려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보는 고향 목포는 “3위 안에 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저력이 있는 도시지만 행정력이나 지역사회 역량, 활력 등의 간극이 큰 도시”다. 도시 기획자이자, 건축을 전공해 ‘공간’을 다루는 터라 책방을 연계해 비어 있는 많은 원도심의 공간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들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또 세상의 모든 직업과 주제에는 관련 책들이 있지요. 포도책방을 다양하게 연결할 수 있을 듯합니다. 포도와 극단 갯돌, 포도와 환경운동, 포도와 숲 등 여러가지 를 엮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벤치마칭을 위해 지자체와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오는데 의미만을 추구하면 자칫 ‘운동권들의 헌책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점은 새책과 다양성을 갖춰야해요. 또 그 동네의 힘으로만 하려는 생각도 버려야합니다. 지역에 책방을 연 외지인들은 적어도 2~3개월에 한번은 찾아오게 되고, 자연스레 ‘관계 인구’가 될 수 있습니다.”

포도책방은 128명의 책방 주인과 함께 ‘새로운 꿈’을 꾼다. 연중무휴. 오후 1시~오후 7시.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목포=장봉선 기자 jb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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