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엉 썩고 비 새고…오지호 가옥 기념물 지정은 ‘보여주기’?
초가 지붕 관리 부실…광주시는 “예산 부족” 수리 거절
가족 측 “다른 구조물까지 썩어…흉가처럼 변하고 있다”
2025년 03월 12일(수) 20:45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 생가.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광주시의 ‘지정 문화유산’인 고(故) 오지호 화가의 집인 ‘오지호 가(家)’가 빗물이 새는 등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

특히 광주시와 동구가 오지호 가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해 보존 대상으로 문화유산 지정, 관리하고 있음에도, 정작 빗물 누수 정비 예산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어 ‘(보호 의지 없는) 보여주기 위한 기념물 지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현재 오지호 가의 초가집 지붕에 설치된 이엉(볏짚 등을 엮어 만든 지붕)은 2단 수준만 남아 있다.

광주시는 오지호가의 이엉을 3단 9겹씩을 쌓는 것을 기준으로 수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12일 방문한 오지호 가 지붕은 30㎝ 이상 두꺼워야 할 이엉이 채 20㎝도 안 되는 두께로만 얹어져 있었다. 그나마 가장 아랫단의 이엉은 수명이 다했는지 까맣게 썩어 있어 사실상 1단 지붕이나 다름없었다.

오지호 가 거주자는 “이엉이 얇아 비가 새고 물길이 나 휘거나 단열이 잘 안 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지호 가 지붕이 얇아진 건 지난 2022년부터였다.

광주시와 동구는 매년 연말에 시비 85%, 구비 15% 비율로 사업비를 투입해 오지호 가 초가 이엉잇기 등 보수 사업을 해 왔다. 초가집은 이엉이 1~2년 사이에 썩어 해지는 특성상 해마다 썩은 이엉을 치우고 새 이엉을 얹어 줘야 한다.

시는 지난 2021년 5년 주기로 이뤄지는 지붕 전체 보수를 위해 3단 이엉을 모두 갈았는데, 이듬해 이엉에서 썩은 부분이 많이 생겨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2022년 말 다량의 썩은 이엉을 치운 뒤 그 해 예산에 맞춰 1단 수준의 이엉만 얹는 데 그치면서 지붕이 2단 수준으로 얇아진 것이다.

이후 오지호 가 측에서는 광주시에 “이엉을 3단 두께로 유지하려면 썩은 부분을 치워낸 뒤 2단을 더 얹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광주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께 오지호 생가의 지붕에 물길이 생겨 이엉이 휜 모습.
오지호 화백의 손녀인 오수경씨는 “지난해에는 지붕이 장맛비를 못 이기고 처마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휘고, 지붕을 받치고 있는 새굴매기, 연죽 등 다른 구조물까지 썩게 만들었다”며 “이엉잇기 현장에서 전문가들도 2단 이상 추가로 이엉을 쌓을 것을 경고했는데도 광주시는 요지부동이라 날이 갈수록 집이 흉가처럼 변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광주시는 한 해 예산이 이엉 1단을 쌓을 수 있는 수준인 2000만원밖에 없는 터라 추가 보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화유산 보수 정비 예산이 지붕 붕괴, 목조 기둥 탈락 등 안전에 직접 문제가 되는 경우에 우선적으로 배정되다 보니 이엉잇기 예산은 적게 편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엉잇기 관련 전문업체와 인력 풀이 급격히 줄고 인건비와 재료비가 수직상승하면서 사업비가 급상승해 예산 확보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해명도 내놨다.

2021년에 3단 이엉 전체를 교체할 땐 2300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이후 1단 이엉을 교체하는 데 2022년 1200만원, 2023년 1900만원, 2024년 2000만원이 드는 등 비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올해 예산 또한 2000만원으로 편성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구조와 안전에 직접 위협이 가지 않는 이엉잇기에 예산을 끌어오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추가 예산을 받으려면 예산 투입에 따른 성과물을 내야 하는데, 대중에게 개방된 공간도 아닌 사유지라 그조차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한편 오지호 가는 한국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인 오지호(1906~1982) 화백이 조선대 교수로 근무 중이던 195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28년간 거주했던 공간으로 지난 1986년 광주시 지정 문화유산(기념물) 제6호로 등록됐다.

오지호 가는 1986년 전면 수리를 거친 뒤 오 화백의 아들인 화가 오승윤씨가 사용했으며, 오씨가 2006년 사망한 이후로는 그의 아내 이상실 여사가 관리자로서 거주 중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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