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발견] 세대간 문화 잇고 힐링 더하다, 도심속 ‘인문학 쉼터’
[ <1> 동구인문학당]
‘트렌드 코리아’ 저자 김난도 조부
1954년 한옥+양옥 접목해 집 건축
전통 가옥에 일본식 건축 장점 살려
2020년 도시개발로 해체 위기 넘고
지역 예술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선정
‘올드&뉴’ 리모델링 후 2022년 개방
‘트렌드 코리아’ 저자 김난도 조부
1954년 한옥+양옥 접목해 집 건축
전통 가옥에 일본식 건축 장점 살려
2020년 도시개발로 해체 위기 넘고
지역 예술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선정
‘올드&뉴’ 리모델링 후 2022년 개방
![]() 광주 동명동에 자리한 동구인문학당은 1954년에 건립된 한옥과 양옥을 접목한 독특한 스타일의 근대가옥이다. 한옥의 긴 복도를 따라 이어져 있는 다실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보존돼 운치를 자아낸다. |
‘누군가의 집에서 모두의 공간이 되다.’
MZ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 광주 동명동은 늘 활기가 넘친다.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카페에서부터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레스토랑, 유행을 리드하는 트렌디 숍까지 화려한 면면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서석교회 인근에 위치한 동구인문학당(광주시 동구 동계천로 168-5)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좁은 골목에 둥지를 튼 이 곳에 들어서면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평온함이 느껴진다. 고풍스런 한옥과 삼각지붕의 양옥, 붉은 색 벽돌 굴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 하다.
<편집자 주>
“이곳은 저희 조부 김성채 옹께서 직접 보와 서까래를 지어올린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여기서 아우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습니다. 현대사의 영광과 상처를 묵묵히 견딘 오랜 추억의 터가 인문형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감회와 감사의 마음이 씨와 날로 교차합니다.”
동구인문학당(이하 인문학당)의 본채에 들어서자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 김난도 교수(서울대)의 ‘친절한’ 글귀가 눈에 띈다. 그의 설명대로 인문학당은 완도 출신 김성채(1906~1987)가 이리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도청에서 근무하면서 임양금(1911~1987)과 결혼 후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곳이다.
해방후 구입한 동명동 일대의 땅을 팔아 목돈을 쥔 그는 1954년 지금의 자리에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의 한옥과 양옥을 접목한 집을 건립했다. 사랑채로 쓰인 양옥과 안채로 쓰인 한옥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된 인문학당은 각자 다른 시기에 세워졌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전통가옥과 일본식 건축의 실용적인 장점을 살린 근대 가옥은 인문학당의 역사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그도 그럴것이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 시대적 상황을 담은 귀중한 유산이다. 남서향으로 지어진 인문학당의 왼쪽 양옥에는 별도의 입구와 손님맞이를 위한 현관과 거실이 자리하고 있고, 긴 복도를 따라 각 방과 부엌이 들어선 살림채 한옥이 이어져 있다.
한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에 전후좌우 퇴가 있는 ‘ㄱ’자형이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일본주택 건축을 반영, 정면에 조망과 방풍을 고려해 유리를 사용한 마루문을 뒀다. 즉, 고택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왼쪽 외관은 서양풍이지만 내부는 일본식으로 설계됐고, 오른쪽은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당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지난 2020년 4월, 집주인이 바뀐 이후 오래동안 비어 있던 가옥 주변을 동명동 행정복합센터와 게이트볼 주차장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동구청이 16억 원을 들여 매입한 것이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의 건축가들과 기획자, 예술인들을 중심올 근대가옥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동구청이 주차장 건립 계획을 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여기에 지난 2020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인문학당에 ‘날개’를 달아줬다. 가까스로 근대 가옥을 지켜낸 이들은 마침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던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현장’으로 선정해 공간을 재해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공공미술은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벽화작업이 주를 이뤘지만 동구는 공간 자체를 리모델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기획자인 정유진씨와 신양호 작가 등 지역 예술인 38명은 ‘우리동네 미술, 별별별서’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 예술의 향기를 불어 넣었다.
덕분에 인문학당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공간 리노베이션은 과거의 흔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최소화했다. 양옥의 2층은 내부 미닫이문과 다다미 바닥을 보수했으며 양옥에서 한옥으로 이어지는 긴 마루는 판자로 덮여있던 천장 서까래와 도리를 그대로 살려 다실로 재시공했다.
인상적인 건, 본채 곳곳에 장식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천정에는 한지로 제작된 독특한 전등이 매달려 있고, 현대적인 감각이 풍기는 병풍, 유리창을 장식한 스테인드 글래스, 직접 짠 나무 의자와 탁자, 정성들여 빚은 도자기, 티 테이블 등이 배치돼 눈길을 끈다.
동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거쳐 인문학당의 방향을 정한 후 지난 2022년 1월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다.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활동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한옥채 이외에 정원 건너편에 지상 2층의 인문관, 옛 부엌 터에 지상 1층의 공유부엌을 신축해 ‘올드 & 뉴’의 콘셉트를 실현했다. 본채(132.1㎡)는 아카이브 전시, 다목적 인문 활동 공간, 누구나 차실마실 수 있는 다실로 이뤄져 있으며 2층 다락방은 추억의 만화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축 건물인 인문관(125.5㎡)에서는 시민 책방, 도서 기획 전시 및 다양한 인문프로그램이 펼쳐지고, 공유부엌(42.75㎡)에서는 음식 조리 및 관련 강의가 이루어진다.
인문학당은 인문 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재생산으로 주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3년 대한민국공간대상 대통령상, 2024년 아름다운 문화도시 공간상을 수상했다. ’
올해 인문학당에서는 1년 내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지역의 DJ들과 함께 가요, 팝송,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나는 ‘다락방 음악여행’, 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가 진행하는 ‘영화 인문학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서다솜·위승연 작가 등이 제작한 도자기 스툴과 오브제 등이 놓인 공유부엌에서는 광주의 오래된 음식점 주인들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보는 프로그램 등이 열렸으며 현재는 (사)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강사를 초청 ‘바른 먹거리 기후밥상’을 주제로 강의와 요리실습을 진행중이다.
인문학당의 강보선 디렉터는 “인문학당은 올해 3월부터 본채와 인문관, 공유부엌의 장소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특히 ‘모두의 정원’으로 개방된 학당의 정원과 잉어가 사는 작은 연못은 주민들에게 잠시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관 이후 80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강 디렉터의 설명 대로 인문학당은 지난 5일 다락방 음악여행(진행자·문형식 전 광주MBC 별밤지기, CBS음악FM DJ)을 시작으로 6일 바른먹거리 ‘기후밥상’(강사· 이예숙 마크로바이오틱 강사,박숙희,임윤화 식생활교육 광주네트워크 강사, 전인자,안아름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강사), 11일 ‘영화인문학극장 시즌7 -소설영화학 개론3’(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글=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MZ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 광주 동명동은 늘 활기가 넘친다.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카페에서부터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레스토랑, 유행을 리드하는 트렌디 숍까지 화려한 면면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서석교회 인근에 위치한 동구인문학당(광주시 동구 동계천로 168-5)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좁은 골목에 둥지를 튼 이 곳에 들어서면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평온함이 느껴진다. 고풍스런 한옥과 삼각지붕의 양옥, 붉은 색 벽돌 굴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 하다.
“이곳은 저희 조부 김성채 옹께서 직접 보와 서까래를 지어올린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여기서 아우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습니다. 현대사의 영광과 상처를 묵묵히 견딘 오랜 추억의 터가 인문형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감회와 감사의 마음이 씨와 날로 교차합니다.”
해방후 구입한 동명동 일대의 땅을 팔아 목돈을 쥔 그는 1954년 지금의 자리에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의 한옥과 양옥을 접목한 집을 건립했다. 사랑채로 쓰인 양옥과 안채로 쓰인 한옥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된 인문학당은 각자 다른 시기에 세워졌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전통가옥과 일본식 건축의 실용적인 장점을 살린 근대 가옥은 인문학당의 역사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그도 그럴것이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 시대적 상황을 담은 귀중한 유산이다. 남서향으로 지어진 인문학당의 왼쪽 양옥에는 별도의 입구와 손님맞이를 위한 현관과 거실이 자리하고 있고, 긴 복도를 따라 각 방과 부엌이 들어선 살림채 한옥이 이어져 있다.
![]() 옛 부엌이 있던 자리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꾸민 공유부엌. |
하지만 인문학당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지난 2020년 4월, 집주인이 바뀐 이후 오래동안 비어 있던 가옥 주변을 동명동 행정복합센터와 게이트볼 주차장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동구청이 16억 원을 들여 매입한 것이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의 건축가들과 기획자, 예술인들을 중심올 근대가옥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동구청이 주차장 건립 계획을 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여기에 지난 2020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인문학당에 ‘날개’를 달아줬다. 가까스로 근대 가옥을 지켜낸 이들은 마침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던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현장’으로 선정해 공간을 재해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공공미술은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벽화작업이 주를 이뤘지만 동구는 공간 자체를 리모델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기획자인 정유진씨와 신양호 작가 등 지역 예술인 38명은 ‘우리동네 미술, 별별별서’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 예술의 향기를 불어 넣었다.
덕분에 인문학당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공간 리노베이션은 과거의 흔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최소화했다. 양옥의 2층은 내부 미닫이문과 다다미 바닥을 보수했으며 양옥에서 한옥으로 이어지는 긴 마루는 판자로 덮여있던 천장 서까래와 도리를 그대로 살려 다실로 재시공했다.
![]()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다실. |
동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거쳐 인문학당의 방향을 정한 후 지난 2022년 1월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다.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활동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한옥채 이외에 정원 건너편에 지상 2층의 인문관, 옛 부엌 터에 지상 1층의 공유부엌을 신축해 ‘올드 & 뉴’의 콘셉트를 실현했다. 본채(132.1㎡)는 아카이브 전시, 다목적 인문 활동 공간, 누구나 차실마실 수 있는 다실로 이뤄져 있으며 2층 다락방은 추억의 만화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축 건물인 인문관(125.5㎡)에서는 시민 책방, 도서 기획 전시 및 다양한 인문프로그램이 펼쳐지고, 공유부엌(42.75㎡)에서는 음식 조리 및 관련 강의가 이루어진다.
인문학당은 인문 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재생산으로 주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3년 대한민국공간대상 대통령상, 2024년 아름다운 문화도시 공간상을 수상했다. ’
올해 인문학당에서는 1년 내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지역의 DJ들과 함께 가요, 팝송,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나는 ‘다락방 음악여행’, 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가 진행하는 ‘영화 인문학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 인문관은 영화평론가이자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인 조대영씨가 수집한 만화와 다양한 서적들로 꾸며졌다. |
인문학당의 강보선 디렉터는 “인문학당은 올해 3월부터 본채와 인문관, 공유부엌의 장소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특히 ‘모두의 정원’으로 개방된 학당의 정원과 잉어가 사는 작은 연못은 주민들에게 잠시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관 이후 80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강 디렉터의 설명 대로 인문학당은 지난 5일 다락방 음악여행(진행자·문형식 전 광주MBC 별밤지기, CBS음악FM DJ)을 시작으로 6일 바른먹거리 ‘기후밥상’(강사· 이예숙 마크로바이오틱 강사,박숙희,임윤화 식생활교육 광주네트워크 강사, 전인자,안아름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강사), 11일 ‘영화인문학극장 시즌7 -소설영화학 개론3’(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글=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