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여행하는 101가지 방법-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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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소설 책 172 페이지에 등장한 장소인 것 같은데, 맞을까요?”
가게에 들어선 손님이 말했다. 주인장은 오래 전 소설을 읽었지만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아 집에 돌아가 다시 한번 차분히 소설을 읽었다.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깊이 들어갔어. 못 보던 음악감상실 간판이 보였어. 오층 계단을 숨차게 걸어올라가 동굴 같은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어. 분명 음악 소리가 큰 곳이었을 텐데, 깊은 물 속에 잠긴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소년이 온다’와 베토벤
전주에서 온 부부가 언급한 소설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가게는 충장로의 오래된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 소설 속 장면은 5·18이 터지고 몇 년 후의 모습이다. 베토벤은 현재 위치 맞은편 주차장 자리에 1982년 6월 문을 열었다. 40년 넘게 가게를 맡아 온 주인장은 책 속의 감상실이 현재의 베토벤일 수도, 전임자가 운영하던 옛 베토벤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감상실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확한 것은 작가만이 알 일이지만, 소설 속 장소를 찾아 일부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어 놀랐다고 했다.
오랜만에 베토벤에 들러 이 이야기를 듣던 날, 포항에서 온 두 명의 여성을 만났다. 광주비엔날레 등 굵직한 행사 때면 광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많다. 동명동이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프로야구 시즌이면 KIA타이거즈 등 각 구단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겨울 한 복판,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은 두 사람은 여자프로배구 팬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참조해 코스를 짰다. 경기 관람 외에 유명한 대인시장 순대국밥집(나는 처음 듣는 곳이었다)에서 밥을 먹고, 베토벤에서 차를 마시고,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궁전제과에서 빵을 산 후 귀가하는 코스였다. 조용히 책을 읽는 여고생도 만났다. 전일빌딩 245에 들렀다 온 그는 꼭 광주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고, 베토벤에도 와 보고 싶어 경기도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 역시 도시 산책 시리즈 ‘걸어본다’(난다)를 들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고(故)허수경 시인이 쓴 ‘너 없이 걸었다’를 들고 1박 2일 동안 독일 뮌스터를 여행했고, 소설가 강석경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와 함께 경주를 찾았다. 조선대 김형중 교수의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는 역시 광주에서‘만’ 지낸 광주 토박이인 내가 발견하지 못한 곳이 있나 궁금해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를 ‘광주 방문의 해’로 정한 광주시는 조만간 선포식을 열고 다양한 사업들을 공개한다. 충장축제, 버스킹월드컵 등 자치구의 경쟁력 있는 축제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여서 어느 때보다 내실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 막상 현장에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미술도시 광주’ 같은, 구호만 요란한 행사가 돼서는 안될 일이다.
관에서 예산을 투입하고 기획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행하는 사람’이다. ‘책의 도시’를 표방한 전주 취재 당시 담당 공무원들의 적극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성공작으로 꼽히는 ‘전주책쾌’를 공무원과 함께 진행했던 동네서점 대표가 잡지에 쓴 글 중 “전주책쾌의 성공은 기획자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판을 깔아준 전주도서관 행정의 힘이 컸다. 그들은 축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장 운영 역량도 뛰어났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광주시 등 행정기관과 함께 일하며 힘들고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늘상 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다. 이를 이끌어 내는 것 역시 관의 역할임은 물론이다. 몇 년 전 광주에 놀러온 지인이 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한 후 기사로부터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뭐 볼 거 있다고 거기를 가요? 볼 거 하나도 없어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택시기사 덕분에 낯선 도시의 여행이 더 즐거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참 아쉬웠다.
광주시민은 ‘관광 안내원’
반가운 이야기도 있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기업 CEO가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도예전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마침 전시장 출입구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조금 떨어진 도서관 쪽 출입문을 통해서만 갤러리로 입장할 수 있었다. 피카소 전시도 좋았지만 그는 잘 갖춰진 도서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우리 지역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며 전 직원들에게 가족과 함께 문화전당 방문을 권했고, 전당 앞 유명 식당의 쿠폰도 함께 제공했다. 지역의 명소를 발견하고 키우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당신이 광주를 소개하는 ‘관광 안내원’이라고 상상해 보자. ‘소년이 온다’를 들고 온 이에게,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은 이에게, BTS 제이홉의 흔적을 찾아 온 ‘아미’에게, 광주를 찾은 친구와 은퇴 여행자들에게 당신은 어디를 추천하고 싶은가? 내 마음 속 첫번째 장소는 ○○다.
가게에 들어선 손님이 말했다. 주인장은 오래 전 소설을 읽었지만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아 집에 돌아가 다시 한번 차분히 소설을 읽었다.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깊이 들어갔어. 못 보던 음악감상실 간판이 보였어. 오층 계단을 숨차게 걸어올라가 동굴 같은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어. 분명 음악 소리가 큰 곳이었을 텐데, 깊은 물 속에 잠긴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전주에서 온 부부가 언급한 소설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가게는 충장로의 오래된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 소설 속 장면은 5·18이 터지고 몇 년 후의 모습이다. 베토벤은 현재 위치 맞은편 주차장 자리에 1982년 6월 문을 열었다. 40년 넘게 가게를 맡아 온 주인장은 책 속의 감상실이 현재의 베토벤일 수도, 전임자가 운영하던 옛 베토벤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감상실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확한 것은 작가만이 알 일이지만, 소설 속 장소를 찾아 일부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어 놀랐다고 했다.
겨울 한 복판,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은 두 사람은 여자프로배구 팬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참조해 코스를 짰다. 경기 관람 외에 유명한 대인시장 순대국밥집(나는 처음 듣는 곳이었다)에서 밥을 먹고, 베토벤에서 차를 마시고,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궁전제과에서 빵을 산 후 귀가하는 코스였다. 조용히 책을 읽는 여고생도 만났다. 전일빌딩 245에 들렀다 온 그는 꼭 광주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고, 베토벤에도 와 보고 싶어 경기도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 역시 도시 산책 시리즈 ‘걸어본다’(난다)를 들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고(故)허수경 시인이 쓴 ‘너 없이 걸었다’를 들고 1박 2일 동안 독일 뮌스터를 여행했고, 소설가 강석경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와 함께 경주를 찾았다. 조선대 김형중 교수의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는 역시 광주에서‘만’ 지낸 광주 토박이인 내가 발견하지 못한 곳이 있나 궁금해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를 ‘광주 방문의 해’로 정한 광주시는 조만간 선포식을 열고 다양한 사업들을 공개한다. 충장축제, 버스킹월드컵 등 자치구의 경쟁력 있는 축제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여서 어느 때보다 내실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 막상 현장에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미술도시 광주’ 같은, 구호만 요란한 행사가 돼서는 안될 일이다.
관에서 예산을 투입하고 기획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행하는 사람’이다. ‘책의 도시’를 표방한 전주 취재 당시 담당 공무원들의 적극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성공작으로 꼽히는 ‘전주책쾌’를 공무원과 함께 진행했던 동네서점 대표가 잡지에 쓴 글 중 “전주책쾌의 성공은 기획자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판을 깔아준 전주도서관 행정의 힘이 컸다. 그들은 축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장 운영 역량도 뛰어났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광주시 등 행정기관과 함께 일하며 힘들고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늘상 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다. 이를 이끌어 내는 것 역시 관의 역할임은 물론이다. 몇 년 전 광주에 놀러온 지인이 택시에서 목적지를 말한 후 기사로부터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뭐 볼 거 있다고 거기를 가요? 볼 거 하나도 없어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택시기사 덕분에 낯선 도시의 여행이 더 즐거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참 아쉬웠다.
광주시민은 ‘관광 안내원’
반가운 이야기도 있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기업 CEO가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도예전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마침 전시장 출입구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조금 떨어진 도서관 쪽 출입문을 통해서만 갤러리로 입장할 수 있었다. 피카소 전시도 좋았지만 그는 잘 갖춰진 도서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우리 지역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며 전 직원들에게 가족과 함께 문화전당 방문을 권했고, 전당 앞 유명 식당의 쿠폰도 함께 제공했다. 지역의 명소를 발견하고 키우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당신이 광주를 소개하는 ‘관광 안내원’이라고 상상해 보자. ‘소년이 온다’를 들고 온 이에게,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은 이에게, BTS 제이홉의 흔적을 찾아 온 ‘아미’에게, 광주를 찾은 친구와 은퇴 여행자들에게 당신은 어디를 추천하고 싶은가? 내 마음 속 첫번째 장소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