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방문’에서 ‘마음방문’으로- 김진구 광주시교육청 시민협치진흥원장
2025년 03월 05일(수) 00:00
3월이 오고 목련꽃만 보면 아픈 기억이 찾아온다. 오래전에 담임교사를 하면서 겪은 일 때문이다.

“선생님은 좋겠습니다. 마음이 목련꽃같이 걱정 없고 편안하니까요.”

“무슨 말이냐? 왜 나라고 근심 걱정이 없겠냐? 그리고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목련꽃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미치겠어요.”

자주 지각하는 여고생이었다. 광주시 동구 지원동에 살았다. 당시 학교는 광산구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등교할 수 있었다. 언짢은 눈빛을 몇 번 보내도 지각이 반복되었다. 작정하고 불러서 상담이라기보다는 지청구를 하려고 했는데 첫마디가 ‘선생님은 좋겠습니다’였다.

학생의 사연은 이랬다. 부모가 초등학교 때 이혼해서 아버지와 동생 세 식구가 전세방에 살고 있었다. 건축 현장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을 마셨고 술기운은 자녀들의 타박으로 이어졌다. 방구석에 쪼그려 있다가 아버지의 술주정이 끝나야 동생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동생 도시락 싸서 보낸 후 시내버스에 몸도 마음도 흔들리며 등교한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등교 자체가 의지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학생에게 지각과 목련꽃을 말했다.

교실 앞 화단이 남향이었다. 햇볕이 볼록렌즈처럼 모여서인지 이른 목련꽃이 사알짝 벙글었다. 창밖에 핀 목련꽃을 보면서 아침 조회를 시작했다.

“애들아, 창밖을 보거라. 순백으로 저리도 곱게 피었다. 여러분도 저 목련처럼 맑게 잘 컸으면 좋겠다.”

목련꽃 같은 학생이 되라고 일장 훈시를 했다. 밤늦도록 시달린 이 여학생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원망했겠는가. 그래서 나온 첫마디가 비아냥 섞인 ‘선생님은 좋겠소’였다. 우리 반 40여 명에게 말한 하이얀 목련꽃이 각자의 처지에 따라 40여 가지 색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나는 이 학생과 상담 후 트라우마라 할까, 여러 사람을 상대할 때 주춤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600여 명의 여고생과 교직원이 생활하는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 숫자만큼의 사연을 가지고 등하교를 하고, 근무를 한다. 어젯밤 갖가지 일들은 내면에 담아두고 겉으로 웃거나 무표정으로 오간다. 배려는 상대방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뭉텅 퍼주거나, 딱 잘라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밥상머리 교육도 일방적일 때는 밥상머리 지시가 되기 쉽다.

어제 모든 학교가 개학했다. 학교의 새해는 3월이다. 새 얼굴을 만나고 낯선 환경과 마주한다. 교원의 인사발령도 3월 1일이기에 교무실 구성원도 달라진다. 담임선생님은 누구실까, 좋아하는 과목의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긴장과 기대와 호기심으로 맞이하는 새 학년이다.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 널뛰듯 좋아하고, 헤어지게 되면 맥이 풀리고 힘겨워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진급하는 자녀도 그렇지만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신입생일 경우는 학부모도 긴장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예전에는 이 바쁜 시기에 해야 할 업무 하나가 가정방문이었다. 긍정적인 취지는 충분했지만 지금 잣대로 보면 사생활 침해로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정방문의 시대는 진즉 막을 내렸다. 이제 ‘가정방문’ 대신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존중과 정성으로 교감하는 ‘마음방문’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이 나름대로 학생과 만나고 계시지만 올해부터 학생들의 마음을 방문하는 3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마음 아픈 아이들에게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마음방문을 하면 따뜻한 새 출발이 될 것이다. 학생들도 담임선생님이나 여러 교과 선생님들과 마주하면서, 대화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선생님의 마음을 두드리고 방문할 것이다. 외면할 것인지, 선생님의 지도에 포근하게 안길 것인지.

초등학생 하늘이의 비통한 일로 모두의 마음이 무겁고 침통하다. 걱정도 많다. 새 학기 시작과 함께 학생들의 마음을 방문하여 다독여 주고, 내가 겪은 목련꽃 아픔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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