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기행] 8000여점 ‘독보적 컬렉션’ 세계 거장들 만나는 즐거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1785년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
루브르·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세계 3대 미술관
고야·엘그레코·반다이크·루벤스 등
12~19세기 미술 황금기 유럽 대가들 작품 감상
벨라스케스 ‘시녀들’ 방문객 불러모으는 ‘아이콘’
‘고야 컬렉션’ 백미…‘검은 그림’ 등 131점 소장
2025년 02월 25일(화) 08:00
프라도 미술관의 아이콘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입은 마야’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미술관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는 명승지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도 그럴것이 화려한 랜드마크는 인증샷을 찍고 나면 ‘그만이지만’ 미술관은 기념 사진을 찍고 나면 본격적인 미술관 투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는 관광객들을 설레게 하는 ‘미술의 도시’다. 마드리드 옛 왕궁과 마요르 광장 등이 펼쳐진 마드리드 중심가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미술관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프라도 거리를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 일명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3개의 미술관은 단연 독보적이다. 바로 프라도 미술관, 국립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소피아 왕비 미술관이다.

그중에서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마드리드의 보고(寶庫 )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 다다르면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이 눈에 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gate)앞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풍경이다.

인상적인 건 이들 3곳을 스페인이 낳은 예술가 3명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문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북쪽은 프란시스코 고야, 남쪽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동상이 세워져 마치 이들이 프라도 미술관을 감싸고 있는 느낌을 준다. 정문은 단체관람객들이 입장하고 북쪽은 개인 관람객들이, 남쪽은 교육 관련 단체들이 이용한다.

북쪽 게이트에는 검은색의 대형 고야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GOYA’는 글자가 선명한 동상의 대리석 받침대 위 기둥에는 사면으로 조각된 고야의 회화 속 인물들이 새겨져 흥미롭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당시 외설시비로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옷을 벗은 마야’와 1799년에 출판된 판화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의 괴기한 날개를 단 동물들의 형상이다.

마드리드의 ‘골든 트라이앵글’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미술의 황금기를 장식한 거장들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로비 한 가운데 자리한 강렬한 붉은 색의 기둥과 스페인 조각가 호세 알바레즈 쿠베로(Jose alvarez cubero)의 ‘The Defence of Zaragoaz’(1768~1827)의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미술관에선 사진 촬영이 제한되지만 이 곳은 포토존으로 허용돼 기념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다.

프라도 미술관은 1785년 후안 데 빌라누에바 (Juan de Villanueva)가 찰스 3 세 (Charles III)의 명령에 따라 자연사 박물관으로 건립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하지만 그의 손자 페르디난도 7세가 아내 마리아 이사벨 데 브라 간자 (Maria Isabel de Braganza) 여왕의 뜻을 받아들여 왕립 회화 및 조각 박물관 (Royal Museum of Paintings and Sculptures)으로 바꿔 1819년 11월 ‘프라도 미술관’으로 역사적인 개관을 했다. 로마나, 파리, 런던 처럼 마드리드가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불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데에는 12~19세기를 아우르는 8000여 점의 독보적인 컬렉션이 있다. 내로라 하는 유럽의 미술관들처럼 프라도 미술관 역시 왕실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건립됐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엘 그레코 등 스페인 미술의 황금기를 장식한 거장들의 명화들을 비롯해 루벤스, 반다이크 등 북 유럽 대가들의 걸작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들로 전시장을 꾸미고 있는 점은 프라도 미술관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여타 유럽 미술관들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인상파 화가나 렘브란트도 이 곳에선 게스트에 불과하다. ‘시녀들’로 유명한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그의 제자였던 고야의 컬렉션은 다른 미술관들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하다. 이들은 ‘화가들이 존경하는 화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프라도 미술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프라도 미술관 2층에 전시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 Meninas)을 관람객들이 흥미롭게 감상하고 있다.






펠리페 4세 시절, 궁정화가로 활동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등 500점과 고야 컬렉션은 백미다. 파블로 피카소 등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1656년)은 마드리드를 찾은 관광객들을 미술관으로 불러 들이는 문제작이자 아이콘이다. 원래 제목은 ‘펠리페 4세의 가족 초상화’로, 19세기 제작된 프라도 미술관 작품 목록집에서 ‘시녀들’로 기재됐다. ‘메니나’(Meninas)는 여자 아이 또는 궁정에서 왕족의 시중을 드는 소녀를 뜻하는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시녀가 아닌, 그림 가운데 자리한 마르가리타(Margarita) 공주다. 펠리페 4세와 두번째 부인 마리아나 사이의 딸로 신성러마제국의 황제와 결혼하지만 2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얼핏 보면 단순한 초상화 이지만 ‘시녀들’은 미술사에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작품에 등장하는 거울은 당시 화가들이 금기시 하는 물건이었지만 벨라스케스는 캔버스에 등장시켰고, 궁정화가인 자신을 이 작품의 한가운데 그려 넣어 마치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또한 1층에 집중 전시된 고야의 작품들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다. 생전 700여 점을 남긴 고야는 프라도에만 ‘검은 그림’(Black Paintings) 연작(14점), ‘카를로스 4세의 가족’(1800년), ‘1808년 5월3일’, ‘옷을 벗은 마야’(1795~1800), ‘옷을 입은 마야’(1800~1807) 등 131점의 회화가 소장돼 있다. 18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고야는 벨라스케스, 렘브란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53세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은 수석 궁정화가로 인정받았다.

미술관 1층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스페인 작가 호세 알바레즈 쿠베로의 조각상.






미술관 1층에서 만나게 되는 ‘검은 그림’은 1808~1814년까지 발생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반도 전쟁을 기록한 것으로 ‘1808년 5월2일 마드리드’와 ‘1808년 5월3일 마드리드’는 전쟁의 비극을 깊은 울림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두 그림은 훗날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도 미술관의 또다른 매력은 구관과 신관의 환상적인 조화다. 증축을 통해 전시장과 편의시설을 확충한 미술관은 도서관과 카페, 식당, 강당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특히 신관의 로비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넓은 창문들을 통해 바로크 스타일의 옛 궁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복원된 회랑에 둘러싸인 ‘조각 전시장’은 잠시 관람객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이자 위로를 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마드리드=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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