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되짚어 본 광주·전남 아·태전쟁 유적] “매일 다니던 길목에 일제 군사시설 남아있었을 줄이야”
광주 시민 20여명 ‘지하벙커길’ 탐방
“학생들 역사 교육의 현장 만들었으면”
2025년 02월 24일(월) 07:00
한 시민이 허리를 숙여 5·18역사공원 인근 지하벙커로 들어가고 있다.
“항상 다니던 길목에 일제 군사시설이 남아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광주시 서구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앞으로 지난 8일 오전 9시 20여명의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이른 아침부터 모인 이들은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 도심속 일본군 지하벙커길’ 탐방에 나섰다.

이날 탐방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 주최로 개최됐으며, 화정동 유류고와 충정마을 표지석 그리고 5·18역사공원 일대의 방공호 3곳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5·18역사공원 일대의 일제 군사시설을 둘러본 시민들은 매일같이 지나던 곳에 거대한 방공호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시청 민주보훈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초록색 철장이 열리자 4.5m 높이의 거대한 방공호의 입구로 시민들이 차례차례 들어섰다.

방공호에 들어서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하나 둘 휴대폰 조명이나 가지고 온 손전등을 켰다. 콘크리트 벽돌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이 드러나자 시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여성은 “신기하게 덥지도 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다. 생각보다 바람도 잘 통해 꽤 오래 있을 수 있겠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5·18역사공원의 두 번째 방공호는 공영주차장 한 켠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차된 차량 옆으로 떡하니 나있는 방공호 입구를 발견한 시민들은 “한번씩 이 주변을 지났는데도 이런 구멍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허리를 바짝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에 무릎이 아픈 몇몇은 탐방을 포기하기도 했다. 눈과 비로 쓸려내린 토사로 인해 미끄러운 통로를 지나자 넓고 큰 방공호가 드러났다. 통로 곳곳을 지나던 시민들은 토사에 막힌 입구를 보고 “여기도 원래 길이 있었는데 막혀버렸구나”하고 발길을 돌렸다. 방공호를 마주한 시민들은 “엄혹했던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군인들이 비상시 대피하는 곳이었을까”라며 서로 속삭이며 이곳이 어떻게 쓰였을지를 상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논의했다는 벙커가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날 탐방에 나섰던 이수현(여·48)씨는 “서구에 오랫동안 살았던 데다 아이들이 성진초를 나와 이 주변을 많이 다녔는데도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며 “한없이 방치만 할 것이 아니라 잘 정비해서 아이들이 생생하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현장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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