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델프트, 걷다보면 마주하는 명작 속 그 곳…일상이 ‘동화’
[숨겨진 매력, 유럽의 소도시]
풍차·도심 흐르는 운하 ‘한폭의 그림’
세계 명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평생을 보낸 도시
신비로운 푸른빛의 ‘델프트 도자기’ 인기
현대적 느낌 기차역·도서관 고건물과 조화
트램으로 30분 거리 헤이그엔
2025년 02월 12일(수) 09:00
네덜란드 소도시 델프트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평생 살았던 곳이다. 도시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는 300년 넘은 약국 등 오래된 가게와 구시청사, 신교회 등이 자리잡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Delft)를 방문했던 지인은 그림 속 장소를 꼭 찾아가고 싶었다 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신교회의 높은 첨탑과 소박한 집, 수문과 운하, 한가로운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담긴 페이메이르의 ‘델프트 풍경’이다. 애써 찾아간 곳은 당연히 그림과는 많이 달랐지만, 페이메이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라다본 풍경을 자신 역시 보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풍차마을로 알려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등 아름다운 풍광의 작은 도시를 여럿 품고 있다. 그 중 델프트는 신비로운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사람들은 페이메이르의 흔적을 좇아, 그리고 ‘델프트 블루’로 알려진 델프트 도자기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물론, 특별한 목적 없이 소박하고 동화 같은 델프트 곳곳을 느릿느릿 걷는 즐거움도 무엇과 바꿀 수 없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1시간,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에서 30분이면 도착하는 델프트는 인구 10만여명(2023년 현재)의 작은 도시지만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장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있는 헤이그(Den Hagg)까지 트램으로 채 30분이 걸리지 않아 두 곳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페이메이르가 잠들어 있는 구교회가 바라다보이는 풍경은 아름답다.
기차를 타고 델프트에 도착하면 세련된 역사(驛舍)에 놀란다. 고도(古都)를 방문할 때 연상하는 고풍스러운 모습 대신 현대적 감각의 공간이 기다린다. 높은 천정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은 델프트와 그 주변을 담은 1877년 당시의 지도다. 2015년 완공된 델프역 신청사는 네덜란드 사무소 MECAN00가 설계한 건물로 역사와 시청을 통합해 건설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면 1885년 지은 붉은 벽돌의 옛 역사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이제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중앙을 흐르는 운하 옆으로 델프트 유일의 풍차 델프트 윈드밀이 보인다. 13세기 중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델프트 구시가지는 이웃한 로테르담과 달리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큰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대로 잘 보존돼 있다. 운하를 따라 중앙대로를 걸어도 좋고,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어도 좋다. 작은 마을이라 어느 길로 들어서든, 몇 십분 걷다보면 조금 전 접한 풍경을 다시 만난다. 특히 도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폭이 좁은 운하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작은 조형물과 꽃장식은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완성시키는 일등공신이다.

옛 길드 건물을 활용한 페이메이르 기념관.
마을 중심의 마르크트 광장은 13세기부터 시장 활동의 중심지였다. 무려 1759년부터 운영된 약국과 수백년된 음식점 등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한 광장에서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건물이 눈에 띈다. 이 중 1496년 완공된 델프트 신교회는 페르메이르가 세례를 받은 곳이다. 맞은편의 구시청사는 붉은 나무 창문과 오래된 석조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궁전처럼 보인다. 건물 앞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와 멋지게 차려입은 마부가 대기 중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발길을 잡는 풍경들이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16세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주택 헤메인란츠하우스는 현재 수자원관리청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데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멋진 외관이 눈길을 끈다.

약 1200년에 설립된 구교회는 페르메이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요하네스 페이메이르 1632-1675’라 쓰인 바닥 옆에는 ‘골목길’, ‘우유 따르는 여인’ 등 세 작품의 사진이 놓여 있다. 좁은 운하 맞은편으로 구교회의 시계탑이 보이는 장소는 델프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르크트 광장 옆 골목길에서 만나는 델프트 성 루가 길드 건물은 현재 페르메이르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델프트의 또 하나의 명물은 17세기 중국 도자기에서 파생된 푸른빛의 델프트 도자기다. 델프트 도자기 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박물관을 찾지 않더라도 도자기 판매점들이 공방을 함께 운영, 도자기가 어떤 식으로 제작되는 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소설로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등 페르메에르의 작품과 다양한 문양이 도자기의 소재가 됐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도자기 뿐만이 아니다. 골목길 벽화를 비롯해 가정집의 대문, 거리의 벤치 등도 다양한 델프트 도자기로 제작돼 있다.

델프트의 상징인 푸른빛의 델프트 도자기로 만든 벤치.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도서관과 멋진 외관의 영화관, 다양한 작품이 올려지는 공연장 등 새롭게 지은 건물들은 오래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며 주민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뾰족한 원뿔 모양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델프트 공과대학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헤이그로 발길을 옮긴 이들은 18세기 말까지 마우리츠백작 저택이었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앞에 선다. 같은 방에는 ‘델프트 풍경’도 걸려 있다. 페이메이르가 생전에 남긴 작품이 약 35점에 불과한 터라 진품을 보는 감흥은 더 커진다. 또 ‘그리는 손’으로 알려진 M.C 에셔의 작품을 만나는 에셔박물관도 놓치기 아까운 명소다.

헤이그는 우리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이상설, 이위종과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 애썼던 이준 열사를 만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1907년 7월14일 순국 당시 묵었던 호텔을 매입해 개관한 이준 기념관에 들어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39318400779906024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01일 09: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