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초대석-소설가 정유정] “내가 쓴 소설 통틀어 하고 싶은 말, 네 인생을 살아라”
광주서 간호사로 일하다 41세 늦깎이 등단
‘자유의지’ 문학적 테마로 장편소설 8편 발표
지난해 욕망 3부작 두번째 ‘영원한 천국’ 발간
광주·목포·캐나다 등서 독자와 북토크
‘영원한 천국’에 살면 인간은 평화로워질까?
소설적 질문에 욕망·추구는 인간의 본성 해답
내가 내 인생에서 뭘 욕망하는지 아는 것 중요
2025년 01월 14일(화) 08:00
최근 정유정 작가가 발표한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고, 아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산다면 인간은 과연 평화로워질까?”라는 작가 스스로 던진 ‘소설적 질문’에 대한 답변서이다. 작가는 “독자들은 글이 막혔을 때, 소설이 막혔을 때 가장 먼저 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정유정(59) 작가는 지난 2007년 등단한 후 강력한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어둠과 그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중심에 둔 장편소설들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지난해 8월 독자들에게 선보인 ‘욕망 3부작’중 두 번째 작품인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刊)은 생물학적 외피를 버리고 의식만 업로드(불멸)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자들에게 이야기꾼으로 불리길 바라는 작가는 앞으로 ‘원형적 이야기’를 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캐나다, 광주·목포 등지 독자와 북 토크

“유발 하라리는 과학이 앞으로만 질주할 것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인간의 국경을 넘어갈 것이고, 그들은 초(超)인류가 될 것이고…. 그 초인류에게 붙인 이름이 ‘호모 데우스’(Homo Deus·신이 된 인간)입니다. 초인류가 되려면 인간은 생물학적 외피를 버려야 돼요. 생물학적인 몸을 가지고는 결코 영원히 살 수 없어요. AI(인공지능)가 되지 않는 이상 인류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의식을 업로드 하는 것인데, 그런 세계를 상상해 보게 된 것이죠.”

정유정 작가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2017년)를 읽으면서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고, 아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산다면 인간은 과연 평화로워질까?”라는 ‘소설적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인간의 야성(野性)을 보여주는 소설속 공간인 ‘얼음과 태양의 세상’,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網走) 유빙지대와 이집트 바하리야(Bahariya) 사막을 답사한 후 공상과학(SF)과 스릴러, 로맨스를 넘나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작가는 지난해 8월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을 세상에 내놓은 후 3개월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 도서전(2024년 11월 27~12월 1일)을 비롯해 서울과 광주와 목포 등지를 오가며 북 토크를 통해 많은 독자들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목포시 산정동에 자리한 전남도교육청 목포도서관 주최로 열린 북 토크장에서 작가의 신작 소설 ‘영원한 천국’과 문학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 야성”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 ‘롤라’(아프리카 콩고 말로 ‘낙원’)와 ‘롤라 극장’, ‘드림 시어터’라는 가상세계를 설계하는 등 기존 작품들과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셨습니다.

“제 소설 중에서 가장 사이즈가 크죠. 그전에는 ‘28’(2013년)이 가장 사이즈가 큰 소설이었는데 그보다 사이즈가 큰 거죠. 저한테는 여러 가지로 과제였어요. 큰 틀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엮어갈 것인가? 여러 개의 서브 플롯(Sub Plot)이 있잖아요. 제이와 해상의 사랑이야기, 드림시어터 안 경주의 이야기와 현실의 이야기… 이걸 다 한 줄로 엮어야 되니까, 플롯을 어떻게 짤 것인가 그런 것도 고민이었죠. 저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어떤 과제를 부여해서 한 번씩 모험을 해보는 게 다음 소설을 쓸 때 보탬이 되고, 반 발짝 앞에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제 소설이 ‘빌드 업’(Build up)이 길거든요. 힘드셔도 1장을 ‘껌씹는 기분으로 잘근잘근’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읽으셔야 됩니다. 그러면 차원과 시간이 혼란스럽고 헛갈리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소설을 집필하기 전 사전 자료공부와 현장답사가 탄탄하신데, 이번 소설에서도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 유빙(流氷)지대와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을 직접 다녀오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기 전 공간을 구축하는 조건은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그 캐릭터의 내면을 은유할 수 있어야 돼요. 두 번째는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무대여야 한다는 건데요. ‘이야기가 이야기된다’는 것은 바로 그 장소에서 어떤 사건, 중심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임경주의 내면을 유빙지대라고 봤어요. 비행기로 삿포르까지 3시간, 기차를 타고 아바시리까지 6시간을 갔어요. 그리고 루게릭 병을 앓는 해상이의 공간은 태초에 바다였던 사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여자 주인공인 해상과 제이를 남매로 설정해놓았는데 소설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이집트 문화원에서 저를 초청했어요. 카이로에서 이집트 독자들과 북 콘서트 행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5시간 정도 바하리야 사막으로 달려간 거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1943년 발표) 무대가 된 곳입니다. 검은 사막, 크리스털 사막, 하얀 사막이 있어요. 안개 장막이 걷히면서 사막여우 까만 두 눈과 마주친 순간에 ‘해상과 제이는 남매가 아니라 연애를 할 팔자였나 보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어요. 돌아와서 이야기를 연인으로 바꾸려면 어째야 돼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니까 소설을 엎어야 되죠.(웃음)”

-결론적으로 ‘소설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인간의 야성(野性)’으로 제시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저는 스스로 던진 ‘소설적 질문’에 답을 얻었습니다. ‘호모 데우스’가 돼서 ‘영원한 천국’에 살더라도 인간은 결국 자기 문제를 끌어안을 그런 존재라는 거죠. 욕망과 추구는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마지막까지 간직할 그런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독자 분들이 되게 신선하다고 하세요. 10만 년 전 사바나 시절의 사피엔스와 현재 우리는 외피는 많이 달라졌는데, DNA나 뇌 구조는 거의 변한 게 없다고 그래요. 우리 DNA 속에는 그 야성적인 기질이 살아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인간의 공격성이 타인을 향할 때는 굉장히 파괴적인 힘이 되지만 자신의 인생목표, 자기가 해결해야 될 문제를 향한 공격성은 성취적인 욕망이 됩니다. 내 안의 그걸 깨우라는 것이죠. 내 안에 있는 욕망을 하나의 소중한 무기로 여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중·장년층 보다는 젊은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소설인 거죠. 내 삶을 욕망하라는 거죠. 내가 내 인생에서 뭘 욕망하는 지 알아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고, 내가 내 인생에서 뭘 욕망하는지 내 욕망을 욕망하라는 거죠. 제가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하고 있는 말이 바로 그거예요. ‘네 인생을 살아라!’”

정유정 작가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전에 철저하게 자료조사를 하고, 소설속 공간을 현장답사한다.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속 공간인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 유빙지대를 찾은 작가(2023년 2월).
◇‘무서운 언니’와 ‘다정한 그녀’가 쓰는 소설

정유정 작가는 독자들과의 북 토크 때마다 ‘직장을 다니다 왜 그만두고 작가가 되었나?’,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라는 단골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욕망’이라고 답한다. 작가에게 글을 쓰겠다는 ‘욕망’은 35살에 직장을 그만 두고 11전12기끝에 41살에 등단해 이야기꾼으로 우뚝 선 문학인생의 원동력이었다.

함평 태생인 작가는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 주최 호남예술제를 비롯해 많은 글짓기 대회에 나가 주요 상을 휩쓴 ‘학교대표 글쓰기 선수’였다. 고1이던 1980년 5월 광주 광천동 하숙집에서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밤새 읽으며 ‘누군가 내 소설을 읽고 동이 터오는 창가에서 오열하고 감정의 격랑을 겪게 만드는 소설가가 돼야지’ 생각했다. 20~30대에 새겨진 삶의 나이테는 오롯이 ‘정유정 문학’의 자양분이 됐다. 광주 보훈병원에서 일하던 새내기 간호사 시절 만난 ‘은어소리를 듣는 눈먼 어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배우고 자연주의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인 장편소설 8편을 관통하는 문학적 테마로 ‘자유의지’를 든다. 여기에서 파생된 두 종류의 인간 욕망(‘파멸적인 욕망’과 ‘성취적인 욕망’)을 다룬 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 작가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 2~3년 동안 ‘의자에 묶어놓을’ 이야기는 무엇이 될까? 정유정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한 번도 안 써본 ‘공포 스릴러’라는 과제를 스스로 부여하려 한다. 독자들은 ‘이야기꾼’ 작가가 ‘정유정 월드’에서 또다시 펼쳐낼 새롭고 강렬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은행나무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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