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폐업·코인 투기·전세사기…서민은 생존게임
‘오징어게임2’ 계기로 돌아본 광주·전남
계엄·소비 심리 위축에 자영업자 지난해 10% 폐업
소상공인 ‘빚더미’…신보 대위변제 823억으로 폭증
전세사기 1244건 달해…건당 피해 금액만 1~3억원
3년간 도박 범죄 급증…미혼모·한부모 가족도 증가
2025년 01월 09일(목) 19:30
상금 456억원을 얻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오징어게임에 참가한 이들의 공통분모는 절망적인 삶이다.

이들이 선택한 게임의 법칙은 이기면 상금 전액을 얻지만 지거나 규칙을 어기면 탈락, 즉 죽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존경쟁에 내몰리는 냉혹한 현실은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호프집을 하다 빚더미를 떠안은 박정배(이서환), 전세사기를 당한 사회초년생 박민수(이다윗), 도박중독으로 빚에 쫓기는 박용식(양동근)과 아들의 빚을 대신 갚으려는 어머니 장금자(강애심), 코인투자에 실패한 이명기(임시완)와 미혼모 김준희(조유리), 잘나가던 래퍼였지만 투자에 실패해 빈털털이가 된 약물중독자 타노스(최승현), 성소수자로 거액의 수술비와 생활비가 필요한 조현주(박성훈) 등의 삶은 지옥 같은 현실에 하루하루를 버티는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일상과 닮았다.

◇벼랑 끝 자영업자=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오징어게임2’에서도 게임참가자 456명 앞에서 진행요원은 시즌 1과 같은 대사를 되풀이 한다.

9일 국세청의 지역별 폐업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광주의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10.4%, 전남은 9.0%로 10곳 중 한 곳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즌 1과 시즌 2에서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친구 역할로 나온 박정배(이서환)는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박정배처럼 월세 내기도 빠듯한 재정난을 겪다 결국 폐업하는 지역민도 적지않다.

최근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 ‘3중고’에 이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고환율, 소비 심리 위축 등이 겹쳐 자영업자의 고충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빚더미에 앉은 소상공인들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대위변제’한 액수도 급증세다. 광주·전남 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액은 2021년 276억원, 2022년 288억원, 2023년 823억원으로 폭증했다.

불경기가 지속되자 코인 투자 등 ‘한탕주의’에 빠지는 이들도 늘고 있다. 드라마 속 이명기(임시완)는 암호화폐(코인) 투자 유튜브를 운영하다 18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빚을 떠안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광주 빌라왕’ 등 전세사기 활개=드라마 속 등장인물 박민수(이다윗)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입은 사회 초년생 이다.

전세사기는 ‘무자본 갭투자’가 대표적으로, 부동산 전세금이 오르는 반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매매가보다 임대보증금이 비싼 역전현상을 틈타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임대차 계약을 하면서 받은 보증금으로 주택을 매매하는 투자방식이다.

자본금 없이 부동산을 매매했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전세사기가 성립하는, 이른바 ‘깡통 전세’가 되는 것이다.

2022년 광주 등지에서 이같은 방법으로 400여채 빌라(주택)를 사들여 전세를 냈다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된 ‘광주 빌라왕’이 검거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심의 결과 지난달 25일 기준 전세사기피해 건수는 총 2만 5578건이다. 12월 한 달 동안만 1830건이 추가 결정되는 등 피해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광주·전남 피해자도 적지 않았다. 광주의 피해 건수는 348건, 전남은 896건으로 집계됐다. 돌려받지 못한 임차보증금 피해 금액은 1~3억원 사이인 경우가 97.37%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이다.

◇도박중독자도 급증=도박으로 채무자에게 쫓기던 박용식(양동근)은 어머니 장금자(강애심)를 오징어게임 참가현장에서 만나 “이건(오징어게임) 그냥 게임일 뿐이야” 라고 둘러댄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겁도없이 따라오냐”는 아들의 말에 장금자는 “네 도박 빚 갚으러왔지 게임은 내가 할테니까 너는 집에 가. 다시는 노름 안하기로 약속했잖아”라고 혼을 낸다.

최근 3년(2021~2023년)간 광주·전남지역에도 도박 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다.

광주·전남 경찰청에 따르면 광주·전남 도박범죄는 2021년 249건, 2022년 185건 발생했다가 2023년 34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검거인원도 2021년 434명, 2022년 295명, 2023년 807명에 달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도박의 유혹에 쉽게 휩쓸리고 있다, 도박으로 형사입건된 광주·전남 청소년은 2021년 27명, 2022년 8명, 2023년 12명으로 감소추세였지만, 지난해 45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마약 청정지대 옛말= 오징어게임2의 최고 빌런(악당)으로 꼽히는 타노스(최승현)는 ‘약쟁이 래퍼’다. 힙합 서바이벌 준우승까지 했을 정도로 실력있지만 코인투자에 올인했다가 파산해 결국 오징어게임에 참가하게 됐다.

대검찰청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광주·전남 지역 마약류 사범은 2019년 468명, 2020년 751명, 2021년 715명, 2022년 778명으로 증감을 반복했다. 하지만 2023년 1505명으로 2배 넘게 급증했다. 마약청정지대를 자부했던 광주·전남의 명성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허가받지 않고 향정신성 의약품을 소지하거나 조제 복용하는 범죄인 ‘향정신성 의약품 사범’은 광주·전남에서 2020년 375명에서 2023년 95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미혼모·한부모 가족도 늘어= “너한테 책임지라고 할 거 아니니까 너 하던 대로나 해.”

임신한 상태로 잔혹한 머니게임에 참여한 김준희(조유리)는 전 남자친구인 이명기에게 단호하게 비혼 출산의 의지를 드러낸다. 결혼을 하거나 낙태를 선택하는 대신 미혼모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에도 김준희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광주·전남 혼외 출생자는 2021년 568명(광주 348명, 전남 220명), 2022년 631명(광주 384명, 전남 247명), 2023년 698명(광주402명, 전남 296명) 등이다. 2023년 기준 전체 출생아(1만 4000명) 20명 중 1명이 ‘혼외자’인 셈이다.

박경석(이진욱) 역시 아내 없이 홀로 아픈 딸을 키우고 있다. 결혼 이후에도 이혼·사별 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 중 한 명이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전남의 한부모가족은 광주·전남 연도별로 2020년 9만2303명, 2021년 9만559명, 2022년 8만9393명, 2023년 8만9397명 등으로 꾸준하다.

◇트랜스젠더·성소수자 차별=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 트랜스젠더인 조현주(박성훈)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중사였지만 커밍아웃 이후 강제전역했다. 그는 트랜스젠더에 우호적인 태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정착하기 위해 게임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그는 드라마에서 뛰어난 능력과 인성을 갖췄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다양한 차별에 직면하고 결국 한국사회에서 버티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광주·전남 지역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얼마나 있는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지난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인권 침해나 정신건강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권고한 바 있지만, 여전히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는 것이다.

다만 광주지역 성소수자 지원 인권단체인 ‘인권지기 활짝’에 따르면 지역 내에서 20여명의 트렌스젠더가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광주 1회 퀴어문화축제에는 주최측 추산 1500여명, 2019년 2회에는 300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유연재·김다인·장혜원 기자 yjyou@kwangju.co.kr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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