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결핍에 관한 전시 ‘헝그리 고스트’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서 내년 1월 20일까지
두 작가 보리스 담블리, 소피 덴블뢰 참여
2024년 12월 29일(일) 18:35
‘헝그리 고스트’ 전시장 모습.
유령 하면 무섭고 기괴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죽은 사람의 넋’을 의미하는 유령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유령이 배가 고플 수 있을까. 유령이 배가 고프다는 것은 다의적인 의미를 상정한다. 인간과 동일한 모습을 지닌다는 점, 희로애락애욕정 등 칠정의 감정도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배고픈 유령’을 모티브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보리스 담블리, 소피 덴블뢰의 ‘헝그리 고스트’는 기억과 결핍에 관한 전시다. 유령이, 유령이 되기 전 인간의 기억과 부재를 고스란히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지난 24일 개막해 내년 1월 20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가연지소의 국제레지던시2024의 결과물이다. 보리스 담블리, 소피 덴블뢰는 지난 11월 중순 광주에 도착했다. 이들은 요동치는 탄핵정국의 정치적 격변에서 이방인으로서 광주와 한국사회의 양상들을 조우했다.

포도나무갤러리 정현주 박사는 “‘배고픈 유령’을 의미하는 전시 제목은 기억과 결핍에 관한 텍스트”라며 “사회 문화적인 ‘부재’ 자체를 물질화하고 가시화하는 작업을 지시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티스트들이 조우하고 공감했던 광주와 한국사회에 출몰하는 정신들, 기억들을 이번 전시에 풀어냈다”며 “겨울밤 ‘유령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작고 따뜻한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유령부대’가 독일군을 압박하고 확전을 멈추기 위해 가짜 탱크들을 만들었다는 사실 등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예술적 발언이자 예술가들의 고유한 참여방식이다.

작품 ‘계엄’은 총과 총에 맞서는 손을 형상화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환기한다. 전시장의 작품과 소품들은 실용적인 기능을 넘어 상징적인 매개체로 작용한다.

작가들은 “자본주의 세계의 소비주의적, 물질적 요구에 적응하면서 산 자들이 망자와의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언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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